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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9일 일요일

답답하고 한심하다

Mun Jae In Kim Du Gwan

Jeong Se Gyun Son Hak Gyu

며칠전 "나는 꼼수다"의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합동취조회'를 들었다.

민주통합당은 우리나라 야당 중 득표율 1위의, 명실상부  야권 제1 정당이다.

당연히 수구매국노세력의 대통령후보와 대결을 펼칠 야권통합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당이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 후보들의 식견을 듣고는 대단히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수구매국노세력에게 이번 대선이 절박함의 문제라면 이날 방송에 나온 경선후보들에게 대선이란

한낱 개인의 권력욕 정도인 것 같았다.

4대강 사업 댐(=보)을 폭파해야한단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흔쾌히 동의를 하는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신중한 입장에서 타당성 검증과 손익심사 후 실행하겠다는 게 중론이었다.

한미FTA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폐기를 단정하는 후보는 없었다.

외교상 사정과 국가이익을 절충하여 최선을 찾겠다는 게 대답이었다.

또 왜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과거 자기들이 자랑할만한 정치이력이나 관료경력을 내세워 '내 출마 당위성이야 국민들이 잘 알지 않겠냐'하는 식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문재인 정도가 자신의 출마 변을 좀 설득력있게 말했다고 할까? 그들 중 제일 구체성과 기승전결이 있는 출마 이유였다.)

그들의 식견은 전략상 자로 재고 가위로 잘라낸듯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뿐이었다.

 

답답했다.

지금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끔찍한 세상이다.

세계 자살율 1위의 나라.

가계부채 1,000조에 해고가 곧 살인이 되는 나라.

용역깡패와 경찰이 사람에게 맘대로 욕하고 때리는 나라.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용산철거, 쌍용자동차, 두물머리, 4대강사업, 한미FTA, 저축은행,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10·26부정선거(일명 'D-dos사건'), BBK, 청와대 불법민간사찰, 한일군사정보협정, 종편채널, 언론미디어 악법...

 

단죄하고 징치해서 바로 세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개판의 세상이다.

800만 비정규직을 정규직 전환하거나 7년간 초중고 무상급식이 가능한 돈을 퍼붓고도 끝나지 않은 4대강 사업.

4대강 댐(=보) 폭파는 당연해 보인다.

ISD, 래칫, 네거티브 방식 개방,  스냅백 등 한국의 독소조항들로 가득찬 한미FTA협약.

한미FTA폐기도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폭파'도 '폐기'도 단언하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것을 그들은 당연하게 말하지 않는다.

본심이 그 정도 수준 밖에 못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표를 달라고 하는가?

 

(2012년 9월 9일 씀)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김정미와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

얼마 전 새롭게 알게 된 여가수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김. 정. 미.  40여년쯤 전에 노래를 부르던 가수다.

[사진: http://blog.nave.com/samoaz]

 

그런데 이 가수의 노래가 요즘 노래보다 더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들린다.

사실 요즘 음악의 주류를 형성하는 아이돌 그룹의 수많은 노래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가끔은 영어가 뒤섞인 랩과 빠른 박자감의 노래가 시끄럽게만 들릴 때도 있다.

물론 힙합과 댄스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내 감성이 가진 세대차와 개인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김정미라는 이 70년대 가수는 내 굳어지고 미련해진 감성이 알아챈 매력보다 훨씬 더 엄청나게 대단한 가수였다.

 

내가 김정미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TV를 보다가였다.

가수들의 서바이벌프로그램을 보다가 그들이 부른 원곡을 듣고 싶어졌다.

인터넷을 뒤진다는 게 들국화, 시인과 촌장 그리고 김추자까지 찾아보게 되었고 그러다가 우연히 김정미라는 가수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김추자를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몸놀림을 하면서도 김추자와는 다른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 여가수가 궁금해졌다.

사실 김추자가 데뷔했을 때 내가 태어났으니 김추자의 인기와 파격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를 몇 편의 글과 노래, 영상으로 경험한 게 고작이다.

그래서 그렇게 오래 전에는 이미자, 남진, 나훈아 류의 트로트가 가요의 전부였으리라 상상하던 내게

김추자 말고도 이렇게 매력적인 가수가 또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Kim Jeong Mi 02

[사진: '한국 사이키델릭 록, 보컬리스트의 전설 김정미' DAUM블로그 「안개동산」]

 

김정미는 정신여자고등학교 3학년인1) 1971년, 이른바 신중현 사단에 들어오면서부터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2)

사이키델릭록 보컬리스트라 불리는 그녀의 대표 음반이  '3집-바람(1973)'과 '4집-NOW (1973)'라는데, 내가 그녀의 매력을 느낀 노래가 바로 'NOW'에 실린 '봄'이다.

 

 

'사이키델릭 록'이 뭔지 몰라도 그냥 음악이 좋아서 듣고 있노라면 40여년전에 부른 그녀의 노래는 참신하고 매력적이다.

더구나 많은 젊은이들이 솔로가수 이선희의 노래로만 알고있을 '아름다운 강산'도

김정미의 노래로 들어보면 그 노래가 그냥 고음창법을 잘하는 가수가 부르는 국민가요 수준의 노래가 아니란 걸 금세 깨달을 것이다.

 

이런 감흥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이런 그녀의 매력을 인정하고 있다.

 

김정미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1970년대 초를 대표하는 '한국적 사이키델릭' 여성 보컬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1973년의 두 앨범 '바람'이나 NOW'는 '한국적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정수'를 보여준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1)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70년대 여가수 김정미의 LP(Long Play) 한 장, 촌스럽기 그지없는 앨범 재킷에 지직지직하는 LP 특유의 잡음까지 나는 음반 한장이 450만 원에 팔렸다면?

그나마 이것도 없어서 못 파는 형편이라면?

가요 LP 수집 붐이 일고 있다.

- 동아일보 2002-06-291)


신중현 스스로 자신의 음악에 가장 부합하는 보컬리스트로 첫 손을 꼽았던 김정미는 몽환적 관능으로 무장한 한국 사이키델릭 록 음악의 새로운 역사를 열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김정미 특유의 부유하는 듯한 목소리는 신들린 신중현의 기타 연주와 더불어 초월의 합일을 단숨에 이루어낸다.

그리고 아름다운 강산, 이 고금의 걸작은 김정미의 버전에 이르러 그저 '건전가요'가 아니라 꿈꾸는 듯한 도취의 아름다운 여행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이 앨범은 한국의 대중음악이 무려 삼십여 년 전에 어떤 위대함을 성취했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시금석이다.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1)

70년대 당시 어떻게 이런 곡이 나올 수 있었는지 들을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명곡입니다.

- 허브뮤직  이승용1)

한국에 많은 음반들이 있지만 Now 음반은 단순 대중 가수의 음반을 떠나서 한때 세계를 풍미했던 히피 문화와 반전 문화에 그 뿌리를 둔 사이키델릭 음악이라는 점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서 사이키델릭 음반이 나온 점, 그리고 단순히 외국의 음악을 모방한 것이 아닌 한국적인 정서로 녹여 내서 재 탄생 시킨 한국 전통 민요 정서로 비벼 만든 한국의 락 명반이라는 점에서 Now 음반은 한국 대중 음악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사이키델릭 뮤직은 그녀에 의해 국내 처음으로 제대로 소개 되었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사이키델릭 뮤직이란 환각음악이 아니다.

히피사상의 궁극이 평화를 지향했듯 그녀의 음악 역시 마음의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

- 신중현 자서전 중에서......1)

 

이 뿐만이 아니다.

김정미 음반의 가치가 재발견되면서 복각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으며3), 김정미 팬들에 의해 '김정미 헌정공연'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4)

 

Kim Jeong Mi 03

[사진:  '한국 사이키델릭 록, 보컬리스트의 전설 김정미' DAUM블로그 「안개동산」]

 

그렇담 이렇게 매력적이고 노래 잘하는 가수인 김정미는 지금 뭘하고 있을까?

신중현이 배출한 또 다른 가수인 '펄시스터즈'나 '김추자'를 보면

가끔 TV에 나와 옛날 인기곡을 다시 부르기도 하고, 당대를 살던 사람들의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회자가 되던데...

 

Pearl Sisters      Kim Chu Ja

[왼쪽 사진(펄시스터즈): http://www.lastfm.jp/music/The+Pearl+Sisters]

[오른쪽 사진(김추자):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kpark2010&logNo=40106349682]

 

김정미는 1977년 음반 발표를 마지막으로 음악계를 떠났고, 이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그리고 기껏해야 몇년 전  그녀가 헌정공연에 대해 팬들에게 감사하며 사진 한 장을 보내준6) 게  최신 정보 정도가 된다.

 

Kim Jeong Mi 04

[사진: '기적을 가능케 하는 마법같은 공간 블로그' NAVER블로그 「최규성의 대중문화산책」]

 

여기서 질문 하나.

그렇다면 김정미는, '펄시스터즈'나 '김추자'와 달리 왜 이렇게 대중음악계에서 오랫 동안 잊혀진 가수가 된 걸까?

사실 그녀는 활동 당시에  '펄시스터즈'나 '김추자'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기 가수는 아니었다고 한다.3)

그러나 화려하게 꽃 피우지 못하고 접어야 했던 김정미의 짧은 가수 활동에는

인기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 대중음악사의 안타까운 상처와 비극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Sin Jung Hyeon 01

[사진: http://bbs.music.daum.net/gaia/do/musicbar/read?bbsId=M004&articleId=21785]

 

먼저 신중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ROCK의 대부'라 불리는 그가 김정미를 배출한 사람이다.

내가 좋아한다는 김정미의 '봄'도 그의 작사·작곡 작품이다.

그는 이정화, 펄시스터즈, 김추자, 장현, 박인수, 김정미 등의 가수들과 음악작업을 같이 하는 동시에

'애드포', '덩키스', '더멘', '신중현과 엽전들' 등의 밴드음악 활동을 꾸준히 하였고

'봄비', '찻잔', '님아',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미인', '아름다운 강산' 등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은 많은 노래들을 발표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포크음악의 대모'로 불리는 양희은과 서유석 등 통기타 가수들과도 음반 제작을 하였고

8,90년대 '한국의 마돈나'로 불리는 김완선에게 댄스곡('리듬 속의 그 춤을')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음악활동은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았다.

 

가수후배들(한영애, 강산에, 이은미, 윤도현밴드, 김광민, 김목경 등)로부터 헌정앨범(A Tribute To 신중현, 1997)을 받거나7)

세계 유명 기타브랜드 '펜더(Fender)로부터 세계 6번째(Jeff Beck, Eric Clapton, Eddie Van Halen, Yngwie Malmsteen, Stevie Ray Vaughan, 아시아 최초 신중현) 헌정기타(2009)를 받았다.9)

또 그의 음악(J’ Blues 72)이 헐리우드 영화(Your Sister’s Sister, 2011)에 삽입10)되기도 하고

미국 음반사(Light in The Attic)에서 월드앨범(아름다운 강산: 신중현의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 2011)이 출시10)됐으며

막장정권 MB정부마저 보관문화훈장(2011)을 줌으로써10) 그의 음악 인생을 인정하기도 했다.

 

SJH YHE

[사진: http://s1168.tistory.com/entry/%EC%96%91%ED%9D%AC%EC%9D%80%EC%95%94%EC%88%98%EC%88%A0-%EB%8C%80%ED%95%9C%EB%AF%BC%EA%B5%AD-%ED%8F%AC%ED%81%AC%EA%B3%84%EC%9D%98-%EB%8C%80%EB%AA%A8%E5%A4%A7%E6%AF%8D-%EC%96%91%ED%9D%AC%EC%9D%80]

 

 

 

[사진: http://blog.daum.net/jejuufo/15670000]

 

그러나 그에 대한 이러한 음악적 평가와 명예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1970년대 정치적 폭력 앞에 신음하며 고꾸라져야 했다.

그리고 신중현의 역경은 가수 김정미의 좌절을 동반하고 있었다.

 

신중현은 당시 정치권력으로부터 친일군사독재자 박정희의 '박정희 찬가'를 만들어 달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7)8)

당연히 음악인의 자존심으로서 그런 정치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신중현의 거절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미움을 사는 계기가 된다.

 

1972년 국회를 강제해산하고 계엄령 선포, 유신헌법을 만든 박정희 정권은

대중음악계에서도 70년대 초부터 검열을 강화하여 금지곡을 양산하고 있었고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된 1975년에는 문공부가 나서서 아예 모든 대중가요를 재심사하며 222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고 한다.11)

이런 폭력은 신중현사단과 통기타 가수 등 이른바 '청년문화'코드로 불리는 이들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

 

이장희의 '그건 너' - 가사가 퇴폐적이고 저속하다는 이유

한대수의 '물 좀 주소' - 물고문 연상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허무주의 조장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 저속한 가사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 - 군인들의 사기 저하

양희은의 '아침 이슬' - 가사 중 '태양'이라는 단어가 북한식 인사를 암시함

폴 앤드 메리의 '퍼프 더 매직 드레곤'(Puff the Magic Dragon)' - Puff라는 단어가 마약을 묘사했다는 이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 불신조장

이외에도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등은 유신정권 찬양을 위한 노래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음반자체가 퇴폐로 규정됨12)

 

김정미 역시 저속한 창법 등의 이유로 금지곡을 당하거나 음반이 소각처리되는2)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70년대 정치폭력이 당시 대중음악의 심장에 결정적 비수를 꽂은 사건이 1975년 12월 '대마초 사건'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가수 등의 연예인들이 사회에서 범죄시 하는 '마약'을 복용한 도덕적 타락으로 비판하기 쉽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런 범주의 사건이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 길바닥에 앉아서 피워도 단속 한 번 당한 적 없던 대마초가 하루아침에 범죄 도구가 되고,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물에 집어넣는 고문을 가하며 당대 대중음악 스타들을 범죄자로 옭아맸다,13) 박정희 정권이 끝날 때까지.

 

Dae Ma Cho

[사진: '대마초 파동 30년 청년문화 '해피스모크'에 데다'  한겨레]

 

여기서 다시 질문 하나 더.

박정희 정권은 왜 그렇게 그들에게 가혹했을까?

단순히 대중문화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독재자의 독선과 오만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는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100만표도 안되는 표차로 간신히 누르는 등 정치적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꼈고

거기에 미국의 패색이 짙어가는 베트남전(~1975)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닉슨정부 등으로

한미군사관계 약화에 대한 우려도 커졌을 것이다.

하여 박정희 정권은 국내외 정치환경이 이렇게 나빠지다보니

자신의 정권안정과 유지를 위해 좀 더 강력한 철권통치 방식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권의 불안감과 예민함에서 볼 때

인간의 자유의지를 음악적 감성으로 다양하게 막 꽃피우려는 대중음악계의 성장과 발전은

그들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싹으로 자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달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여기에 대마초가 그 뿌리를 뽑는 아주 그럴싸한 빌미가 돼 주었던 것이다.

 

결국, 박정희라고 하는 친일군사독재정권의 무자비한 정치폭력 아래에서

우리의 소중한 대중음악 시대는 그 싹을 건강하게 틔우지 못하고 비틀려진 채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한국 ROCK의 대부' 신중현과, 후대의 평가가 아닌  진정한 '사이키델릭 록 여제'가 됐을지도 모를 가수 '김정미'가 있다.

 

 

- 첨언:

요즘도 역사를 잘 모른 채 근거 없는 '박정희 향수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다.

또 박정희의 독재를 인정한다고 입으론 떠들면서도 근대화를 가져온 대통령 아니냐며 변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보라.

당대 이렇게 뛰어난 음악인들을 문화적으로 살인하면서 우리의 감성과 대중문화를 난도질한 그를

아직도 그리워하는 이 사회는 정상인가?

 

(2012. 8. 20.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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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1) '내가 사랑했던 비운의 가수 김정미, 간다고 하지마오' DAUM블로그 「부에노의 사는 이야기」

2) 위키백과 - 김정미(가수)

3) '제2의 김추자, 김정미를 아시는가' 한겨레21 (352호, 2001. 4. 5)

4) '한국 사이키델릭 록, 보컬리스트의 전설 김정미' DAUM블로그 「안개동산」

5) '한국 사이키델릭 록의 여제 김정미 (봄)' 블로그 「핸디맨의 음악살롱」

6) '기적을 가능케 하는 마법같은 공간 블로그' NAVER블로그 「최규성의 대중문화산책」

7) '♣한국 ROCK계의 대부~ 신중현&The Man/아름다운 강산' DAUM블로그 우리사는 얘기

    ※ 밴드 이름, 철자 잘못으로 보임: The Man → The Men

    ※ 블로그 내용이 맥락, 표현, 단어 사용 등에서 주 8) 글의 인용으로 보임.

8) '신중현 - 임진모가 만난 사람' OIMUSIC 2002년 8월호

9) '락의 대부 [신중현] 펜더기타 헌정받다!' DAUM 뮤직 게시판 (냠냠 님)

10) '신중현 사운드의 50여년 기록...난 행운아' 연합뉴스 (2011. 11. 10 송고)

11) '70년대 청년문화와 금지곡의 시대' NAVER 블로그 MEGA PANTERA

12) '1.70,80년대 금지곡' 블로그 歸去來辭-不惑이냐 王惑이냐-

13) 김소민 '대마초 파동 30년 청년문화 '해피스모크'에 데다'  한겨레 (2005. 11. 30 등록)

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정치중립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한국화학공학회라는 단체에서 한 말이다.

이 단체에서 이런 말을 꺼낸 사연이 있다.
지난 4월 이 한국화학공학회라는 곳에서 제주 서귀포 학술강연에 김광섭이라는 70대 재미공학박사를 초청하였다.
김박사는 강연을 위하여 천안함 침몰사건-흡착물과 1번 글씨에 근거한 어뢰설을 검증하기 위한 버블의 온도 계산이라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강연이 취소가 되었고 김박사는 한국화학공학회로부터 한국의 특수한 실정 때문에 강연을 취소한다는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화공학회가 김광섭 박사에게 보낸 메일에는 화공학회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김 박사의) 논문은 금년에 두 번 있는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취소 사유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참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연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자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 학자의 논문발표와 강연의 자유를 제한한다니…?
말이 안돼도 너무 말이 안된다.
물론 이 이야기의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정권의 외압 가능성도 농후하고 딴은 권력의 눈치를 보는 학회측의 곤란한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 나오는 정치적 중립이란 이데올로기에 대해선 몇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정치와 우리 삶에 대한 우리사회의 오래되고 잘못된 인식과 가치관이 투영되어있기 때문이다.

먼저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우리 보통사람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흔히 정치하면 TV와 방송에서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이 생각나고 그래서 그들에게 욕지거리는 할지언정 우리 삶과는 별개의 이야기로 넘겨버리기 쉽다.
그러나 정치란 우리네 삶에서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우리는 원유가 등락이 반영도 안되는 기름값에 누굴 위해 걷는 건지도 모르는 간접세를 합친 가격에 기름을 산다.
그리고 그 비싼 기름 넣은 자동차를 탄다.
우리는 지금 응당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의 무료 서비스를 이동통신사들의 독과점 권력 때문에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
우리는 누구나 의료보험카드가 있다.
그러나 암, 백혈병, 치매 등을 염려하여 우리는 TV 속 수많은 보험상품 중 하나를 또 산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 중 누군가를 의료사고로 잃으면 변변한 법적 보호 하나 없이 판사, 변호사 앞에서 의사의 과실을 증명하기 위해 의료전문인과 길고 외로운 싸움을 한다.
어느 날에는 십여 년이 넘도록 다닌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통지를 받고, 하여 노동위원회에 이의제기를 했는데도, 그리고 법정에서 승소했는데도 재벌의 엄청난 권력 앞에서 억울한 눈물을 지으며 쫓겨 난다.
그리고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땀 흘려 지은 농사를 국가공익이란 이름의 토건행정 때문에 하루아침에 흙더미에 파묻히는 걸 눈뜨고 지켜봐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돈이 없고 자기 집과 땅이 없다는 이유로 피땀으로 일군 삶의 경륜과 노력의 소산을 빼앗긴 채 살던 집과 일하던 가게에서 강제로 쫓겨난다.
그리고 우리 중 또 다른 사람들은 좀 더 평등한 삶과 의로운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다가 경찰과 검찰에게 얻어 맞거나 체포 당하고 징역을 살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한 개인의 나홀로 삶이 아니라 사회적 고리와 맞물린 삶이다.
우리 삶의 많은 것이 사회의 공론의 장으로 나와 논의되고 합의되어 개선해야 할 대상이다.
즉 우리 삶의 문제가 정치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 보통사람들의 시선은 어떠한가?
국회의원 금뱃지는 돈많고 힘 센 사람이 다는 것.
정치하는 놈들이 제일 잘하는 건 몸싸움과 당파싸움.
정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것.
고작 이 정도 수준 아닌가?

그러나 정치는 우리 삶을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돈많고 힘 센 사람이 아니라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 국회의원 금뱃지를 달아야 한다.
그러니 더 치열하고 가열차게 싸워서 사회의 최대유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정치를 위해서 우리 보통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과 비판과 참여의 시선으로 정치판을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화학공학회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건의 발단은 김광섭 박사의 논문 내용이었다.
수십 명의 젊은 군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천안함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정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어뢰격침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젊은 목숨들을 빼앗은 살인자가 북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의혹과 문제제기가 있었다.
정부는 대답을 회피했다.
만약 정부의 발표가 거짓말이라면 누군가 젊은 군인들의 목숨을 빼앗고도 그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린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여전히 권력을 쥔 채 또 다른 젊은 군인들의 목숨을 무책임하게 빼앗을지도 모른다.

김광섭 박사의 학술강연은 정치적으로 정의로운 것이었다.
아무리 나름의 속사정이 있을는지 모를 일이지만 화공학회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변명은 정치적으로 부끄러운 짓이었다.

정치적 중립이라고?

개소리하지 마라.’
부끄러운 줄 알아라.’
하고 수십 개의 언론사가 비판을 했어야 옳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슬프다.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내가 트위터를 하는 이유











내가 트위터를 언제 처음 시작했는지, 왜 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기억은 없다.
다만 이것 저것 지난 흔적을 뒤져보니 한 2년쯤 전에 처음 트위터에 가입을 했던 것 같다.
생활비로 꾸기 시작한 빚이 점점 늘어가고 어떻게 해볼 도리는 막막해서 답답하고 괴로웠던 심정을 아무에게나 쉽게 터놓기도 어려워 나 혼자란 외론 감정마저 느끼고 있던 때였다.
그 때 박중훈 등 연예인도 화제가 되면서 SNS라는 것이 붐처럼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인터넷만 있으면 사회소통망을 구성할 수 있다…?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한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사회소통 수단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작정 가입한 트위터 세상은 내게 너무 낯설기만 했다. 뭔가 함께 나눌 관심사나 대화거리가 내겐 전혀 없는 것 같고 팔로잉’ ‘리트윗’ ‘해시태그등의 생경한 용어들
나는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트위터를 잊고 살았다. 내 생활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나마 교회 가족들의 헌금 덕분에 몇 달을 버티며 구직활동을 했지만 직장은 얻지도 못하고 손에 쥔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빚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눈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죽고만 싶었다.
채무 독촉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두려움과 회한의 연속이었고 죽고만 싶었다.
진짜 죽을 생각도 했다.
그러나 죽지 못했다.
죽는 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죽어 떠나기엔 너무 아까운 세상이고 내 자살이 억울해졌다.
비록 입에 풀칠만하고서 목숨을 연명하더라도 살고 싶어졌다.
파산의 방도를 찾아 보았다.
쉽지 않았고 친구들의 돈을 또 한번 유용하는 나쁜 짓도 저질러야 했다.

파산신청서류를 법원에 접수하고도 채무 독촉전화는 멈추지 않았다.
갚을 수 없는 형편이고 그래서 파산신청을 했다는 사정 얘기도 소용없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채권사의 태도는 냉정하고 매서웠다.
잔인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언제까지 무조건 갚으라는 둥, 집을 방문하겠다는 둥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 봐왔던 사채업 폭력배들의 행패를 상상하게 했고 날마다 그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어떻게 견디나? 어찌해야할까?
날마다 하루의 대부분을 이 빚독촉에 대한 시름으로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한 인터넷 문서 하나가 있었다.
불법채권추심 대응 10대 수칙
채권추심에도 지켜야 할 법적 기준이 있고 불법추심행위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에 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문서였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채무독촉의 시름을 한결 더는 느낌이었다.

고마웠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런 법규를 만들어준 누군가가 고마웠다.
감당 못할 빚에 몰린 이후 나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속에 살았다.
가족을 비롯한 사회의 시선도 책임 못지는 채무자에게는 차갑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채무자를 보호하는 법규를 누군가 만들어줬다는 데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그런사람이 되자.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났다.
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배우 김여진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을 지지한다는 김여진의 1인시위에 대한 기사였다.
반값등록금 문제가 하도 핫이슈여서 나도 무심하게 몇 번 듣긴 했지만, 김여진의 기사는 좀 남다르게 다가왔다.
최고 TOP배우는 아니지만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여배우가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에 관심이 갔다.
그것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 표명을 꺼려하는 우리나라 연예계 분위기에서 이 정도의 배우가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다는 것이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여진의 트위터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김여진이 트위터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트위터에 가입했던 일이 생각났다.
트위터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로잉’ ‘리트윗’ ‘해시태그를 배우며 소위 트친들을 만들어갔다.
1년이나 걸린다는 파산면책 심사를 견디는 시간 동안 트위터는 그 시간을 견디는 유용한 수단이자 내가 사회를 알고 만나는, 중요한 소통의 매체였다.

김여진의 트윗을 읽고 한진중공업김진숙을 알게 되었다.
명동마리제주강정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부당하고 억울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너무도 절박하게 내몰린 죄없는 사람들의 치열한 싸움이 너무 많았다.
그들의 트윗에는 뜬구름 잡는 듯한 얘기는 전혀 없었고 모두가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나와 크게 다를 바 없는)의 정직한 고백들이었다.
찌라시가 범람하는 언론계의 기사들보다 트위터 한 줄을 읽는 것이 현실을 더 깊이있게 배우는 방법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내 삶의 주변은 여전히 가난하고 불안정했다.
춘천시가 야심차게 밀어 부치는 약사천개발사업의 바람이 우리집 주변에도 몰아 닥쳤다.
주민설명회안내문이 우편으로 날아오고 부동산중개업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몇차례 무산되었던 효일재개발사업도 다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긍정적 변화가 아니었다.
절대 장년층과 노년층이 많은데다 2,30년 이상씩 살아온 터줏대감들이 많이 사는 주택가가 우리 동네였다.
대부분의 민심이 주거보장을 하지 않는 이러한 막개발을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었다.
동네는 많이 뒤숭숭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또 채무독촉안내 우편물이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이렇게 심란하고 불편한 삶은 나를 더욱 트위터에 열중하게 만들었다.

트위터는 억울한 처사에 치열하게 맞서 싸우는 서민들의 고백들이 있었고 그 고백들은 각박한 현실에서 참담함과 무력감을 느끼는 내게 힘겨운 삶을 버티는 용기를 주고 있었다.
말랑말랑한 노래 한 곡을 듣거나 달콤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위안과 힘을 주고 있었다.

이제 파산면책 결정을 얻었다.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삶의 미래도 캄캄하지만 채무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그래서인가?
그만큼 마음이 간사해져서일까?
이제는 희망버스, 명동마리 소식에 열중하던 때만큼 많은 시간을 트위터에 할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어찌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고 생계를 꾸리며 내 가정을 만들지 모르겠다.
그래서 두려움과 절망감, 그리고 외로움에 빠져든다.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인터넷을 배회하지만 내가 꿈 꾸기엔 너무 높아보이는 그네들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금세 씁쓸해지거나 소외감을 느낀다.
그럴 때 나는 다시 트위터를 찾는다.
거기에 정직한 목소리들이 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목소리. 억울함에 분노하고 호소하는 목소리. 부정한 세상을 비꼬고 탄식하는 소리. 어렵지만 힘들지만 돕고 격려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엔 TV나 상업적 인터넷 정보들처럼 허황한 설교도 요란한 치장도 거짓된 도덕도 그리고 교묘한 상술도 없다.
듣다보면
그래. 그래. 맞아. 나도 그런 생각해. 나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어
하고 동감하고 열중하게 되는 이웃의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나에게 가르쳐준다.
이게 네가 사는 세상이야.’
네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구.’
그리고 내게 질문하다.
그래, 이런 세상에서 너는 어떻게 살 거니?”

2012년 6월 7일 목요일

맑스는 인간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할까?





언젠가 매형과 이야기를 하다가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인간의 행복을 부당하게 짓밟는 권력의 부조리와 탐욕 등을 이야기하면서 사회의 혁명과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그런 나에게 매형은 인간의 본질적 인성의 문제를 강조하였다. 그러다보니 겨우 서당개 3년에 풍월 읊는 정도의 지식 밖에 없는 내가 맑스철학 얘기를 하게 되었고 매형은 기독교적 입장에 선 인간본성의 한계를 짚고 나왔다. 그때 매형이 내게 물은 것이 "그럼 (사회구조 같은 것의 혁신이나 개혁만 중요하고) 인간에 대한 것-이를테면 개인의 인격적 도덕적 타락, 본성의 문제 등-은 도외시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난 그 대화가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싶었던 내 의도를 매형이 몰라주고 탁상공론식의 철학얘기로 빠지는 것 같아 그만 하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질문을 생각해 본다. 
사회의 혁신이나 개혁 더 나아가서는 혁명이 이뤄져 지금보다 더 나아진 사회로 변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100% 완벽한 무결점사회라고 호언장담하지 못하는 이상, 인간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라. 같은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만 보더라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양상이 다르고 가지각색인데 어떻게 이러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인간사회의 발전과 희망을 논할 수 있을까?
가볍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만약 인간의 공평한 행복추구권 보장을 꿈꾸었던 맑스에게 내가 받은 이 질문에 대신 대답해 주길 바란다면 그는 어떻게 말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맑스주의 경제학에서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산관계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전반과 인류 역사의 발전을 이야기했던 맑스는 과연 인간 자체에 대한 문제는 빠뜨리고 있는 걸까?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 
일단 출발부터가 다르다. 맑스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모든 존재는 물질에 기초하여 존재한다'는 유물론의 입장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맑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철학, 사상 등의 관념적인 것이든)이 물질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바로 이러한 철학적 태도로 인간을 바라보면 기독교에서 신의 구원으로 회복되는 인간은 고유한 본성을 가진 정형화된 인간으로 맑스가 말하는 인간론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다시 말해 맑스는 본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진 인간(정형화된 인간)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았다. 어떤 가치부여나 의미부여가 되지않은 물질적 존재로서 인간은 물적기반위에서 진화하고 변화 발전해 온 것일 뿐이었다. 그 어떤 대단한 도덕적 인격을 가진 인간(가령, 공자나 석가모니)도 물적 기반을 떠나서 생존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사악한 인격의 인간(나영이사건의 조두순이나 수원토막살인사건의 오원춘)도 그렇게 범죄를 저지르는 데까지 이른 물적기반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틀 안에서 본다면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차별이 존재할 수 없으며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할 평등한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가 가진 문제를 논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든 맑스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든 그 부조리와 범죄의 문제를 비판하는데 둘 다 동의하면서도 해법의 입장에 들어가면 한쪽은 인간본성의 문제를 강조하게 되고 다른 한쪽은 사회의 구조적 개혁이나 혁명을 논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회 구조의 혁신, 개혁만 중요하고 인간 본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도외시하는 것이냐'는 매형의 질문은, 변증법적으로 변화발전하는 물적 세계에서 역시 물적 존재인 인간의 삶을 인정하지 못해서 던져진 셈이다.

2012년 4월 30일 월요일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사람
아무 것도 없다.
내 하늘과 내 땅과
내 꽃도
내 나무도 없다.
기대어 쉴 나무 그늘엔
비바람에 지쳐 낡은 담벼락뿐.
그리고 남은 것은
달랑 부끄러움과 늙은 빈주먹 하나.
아, 그렇구나!
나는 가난한 사람.
                                     (2011. 7. 2)


2012년 1월 21일 토요일

춘천시가 약사재정비사업을 밀어부치는 이유가 궁금하다 (3)

2차례의 주민설명회 이후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서 그냥 그렇게 또 시간만 흘러가나 보다 싶었다.
그도 그럴것이 주민설명회에서 이렇다할 세부사항이 발표된 것도 없었고
주민질문 등에 따른 확약된 답변 등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네 주변에 길을 닦으려는 것인지 중장비 한두대가 언뜻 언뜻 나타나기도하고,
또 동네 아주머니 두어 분이 춘천시의 입장만 반영된 사업방식에 반대하는 주민 서명서를 받으러 집으로 방문하시기도 하고
공청회 안내문이 날아오기도 하면서 8지구 약사재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춘천시가 벌이는 이 사업이 정말로 지역주민에게 유익한 사업이라면
짚고 싶은 문제점과 궁금한 것 몇 가지가 있다.
[2011-09-27] 약사재정비촉진계획(변경)주민설명회-자료3_(1)
문제점1. 주민공람공고 안내문 등 주민공람과 관련한 어떤 정보도 춘천시로부터 받은 적이 없다.
→지역주민의 유익을 위한 사업이 되려면 사업 절차상 주민들에게 사업 이해 차원에서도 많은 정보 제공이 필수적인 것 아닌가?

문제점2. 2차 주민설명회에서 언급했던 "사업찬반에 대한 주민의견수렴"이 전혀 없거나 거의 미미하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 시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번 방문하기는 했다는데 방문의 성격이나 취지에 대해서도 부모님은 거의 이해를 못하시고 '약사재정비사업'에 대해 떠들고만 갔다는 식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사업찬반에 대한 주민의견수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점3. 10월말에 연다던 주민공청회는 일정연기에 대한 안내 없이 11월말경인가 열려서 일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참석하진 않았지만, 주민공청회 안내문을 11월에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계획된 일정이 훨씬 지난 후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발표한 행정 절차상의 계획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일정연기에 대해 주민들에게 안내문 발송 등의 배려조차 않는 춘천시의 사업추진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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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동으로 이루어진 낙원아파트 (2012. 1. 18)

궁금1. 2차 주민설명회에서 주민 질문에 따르면,
'낙원아파트가 8지구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는데 낙원아파트는 8지구인 우리집 바로 건너편이고 4개동 밖에 안되는  단지인데
왜 8지구에서 제외됐을까요?
만약, 낙원아파트 단지가 8지구에 포함된다면 51%라는 춘천시 소유지분도 그만큼 줄어드는 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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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예술회관으로 가는 길, 공사안내판으로 통행차단되어 있다. 주민 한 분이 불평을 하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201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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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예술회관으로 가는 길 (201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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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예술회관 통행차단 안내표지판 (2012. 1. 18)

궁금2. 초등학교전면무상급식 비용20%는 예산편성 못하겠다는 춘천시가
아직도 멀쩡해보이는 춘천우체국 건물은 부숴서 도로확장하겠다하고
보도블록 까뒤집으면서 문화예술회관 앞마당 공사하고 하는 이유는 뭔가요?
도대체 "약사재정비사업"을 지지하고 추동하는 사람과 계층은 누구입니까?
정말로 지역주민을 위한 개발사업이 맞습니까?
개발의 이익을 주민들에게 분배해 줄 것이 확실합니까?

춘천시가 약사재정비사업을 밀어부치는 이유가 궁금하다 (2)

작년에 2번의 주민설명회를 간 적이 있다.
귀가 어두우신 80대 아버지를 대신해서 참석했다. (70대 어머닌 그때 병원에 입원중이셨던 것 갈다.)
집을 사본 적도 없고 부동산이라든가 이런 쪽에 거의 어두운 상황이었지만,
동네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는 재개발사업 분위기에서  그래도 피해 안보고 우리집을 지킬 수 있는
정보 하나라도 있으면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갔다.

첫번 주민설명회는 별다른 게 없었던 것 같다.
주민들의 상당한 참석에도 불구하고 설명회를 개최한 춘천시에서 내놓은 내용은
"약사재정비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법령(그것을 정확히 법령이라고 부르는지, 아니면 시 조례라든가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이 통과됐다'는 게 전부였다.
개발을 위해 시가 주민들에게 보장해주거나 대책 마련을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로정비사업은 시가 알아서 추진할테니 신경쓸 일이 아니고 주택개발은 민간개발하는 것이니 주민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낡고 오래된 집들이 많아서 개발의 필요성을 주민들이 느끼고는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환경이 시의 책임있는 태도와 보장아래 다른동네들(석사동, 퇴계동, 온의동)처럼
개선되길 바라는 것이지,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업의 이름으로 동네 아무데나 함부로 길을 깎거나 내버리고 나몰라라하는 식으로 끝나버리는 개발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게다가 동네 일부에서 만들었던 '효일조합'이란 이름의 민간재개발이 최근까지도 공사를 못하고 계속 말썽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온 주민들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두번째 주민설명회 안내문을 받았다.
[2011-09-27] 약사재정비촉진계획(변경)주민설명회-우편봉투
[2011-09-27] 약사재정비촉진계획(변경)주민설명회-통지문
자신의 이름을 '신용주(?)'라고 밝힌 시청 도시정비과장이 설명을 맡았다.

내용은 딱 2가지였다.
1) 첫번 주민설명회에서,
민간개발방식의 주택개발사업을 '도시개발법'인가 하는 방식으로 바꿔 주택재개발사업을 벌이겠다는 것.
(사실, 행정상의 차이일 뿐 주민들에게 무슨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음.)
2) 8지구 약사재정비 사업의 구체적 사업 시행계획을 설명하겠다는 것.

[2011-09-27] 약사재정비촉진계획(변경)주민설명회-자료3
 [2011-09-27] 약사재정비촉진계획(변경)주민설명회-자료4
듣고나서
이런 쪽에 아는 바도 없고 설명회랍시고 떠드는 법령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다 갈 수는 없다 싶어서 논리적으로 몇가지를 짚어 물었다.

그 중 기억 나는 것이
1.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주거용 부동산이지 재테크의 부동산이 아닙니다.
몇 푼 쥐어주는 식의 보상방식이 아니라 이주대책을 보장하는 보상방식은 마련되어 있지 않나요?
▶ 답변: LH공사와 분양계약을 통해 이주대책 보장방식을 계획했지만 LH공사의 분양계획차질로 어렵습니다.
2. 사업예산이 안내문에 800억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보상가 감정도 안나온 상황에서 어떻게 사업예산 규모가 나올 수 있나요?
(몇 푼 쥐어주고 쫓아내겠다는 계획이 들어있는 건 아닌가요?)
▶답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희 자료에 따른 대략적인 산출규모입니다.
3. 주민 의견을 묻겠다고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물을 건가요? (방문/설문조사)
▶답변: 추후에 최선의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4. (여러 사람의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그러면 이렇게 여쭤볼게요.
주민이 반대하면 폐기될 수도 있는 사업입니까?
▶답변: 8지구의 춘천시 소유지분이 51%입니다.  지금 춘천시가 주민  동의 없이 시행해도 하자없는 사업입니다.
다만, 저희 시가 절차상 주민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아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업을 하겠다고 추진했다가 포기하면 그게 어떻게 되겠어요. (폐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

질문한 답변중에 내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켜주는 그 어떤 약속이나 보장도 들어있지 않았다.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춘천시가 약사재정비사업을 밀어부치는 이유가 궁금하다 (1)

12월이었던 것 같다.
Lee Kwang Jun
▲ 춘천시장 이광준 씨
강원도와 도교육청이 재정의 80%를 지원하는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춘천시가 강원도 18개 시군 중에서 유일하게 거부하고 나섰다는 기사를 보았다.
관련기사>
[강원도민일보] 무상급식 거부 반발 확산
[강원도민일보] 춘천시·시의회 무상급식 공방가열
[한겨레신문] 춘천시 무상급식 거부에 결국… “학부모 힘으로 예산 17억 마련”
[한겨레신문] 춘천시, 무상급식 거부해놓고… 교육청 매칭예산 60억은 달라?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동네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 복지담당을 만나 복지상담을 받으면서 구차한 하소연을 어렵게 털어놓은 끝에 고작 짤막하고 무성의한 답변 몇 마디를 들어야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강원도의 무상급식지원 정책은  초등학생도 아니고 자녀도 없는 나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일은 아니지만 기뻐하고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굳이 이런 경험이 아니었더라도 상식적으로만 생각해 봐도 우리의 공교육 환경이 얼마나 윤택해지는 좋은 일인가?
그런데 춘천시는 이것을 거부하고 반대하였다. 왜?
신문기사를 통해 춘천시의 입장이란 것을 살펴보면
(춘천시가 여러가지 거부논리를 내세우지만 많은 부분들은 전면무상급식 지지측과 진실공방에 가까운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춘천시가 전면무상급식을 거부하며 내세우는 가장 효과적인 명분은
빠듯한 시 예산에서 '전면무상급식'에 돈을 쓰느니  '노인 일자리 창출'에 돈을 쓰겠다는 것이다.
춘천시민을 위해, 없는 복지예산을 잘 쪼개서 쓰려고 고민하는 중인데 이번엔 전면무상급식 재원까지 마련해야 되느냐 하는 식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명분에 춘천시가 얼마나 순수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을까 매우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춘천시 효자 1동'이라는 동네 상황 때문이다.
효자 1동은  춘천시 외곽의 면단위 지역보다도 인구수가 적고 노령인구가 많은 동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춘천시가 현재 '약사재정비사업'이라는 것을 벌이고 있는데,
'노인일자리창출' 복지예산 운운하는 춘천시가 이 힘없고 노령인구 많은 동네 주민들을
무조건 동네 바깥으로 몰아내는 식의 개발사업을 밀어부치는 인상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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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청 홈페이지 첫화면 (201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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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재정비사업 안내문 (시청 홈페이지, 2012. 1. 20)
시청홈페이지를 접속하면 재정비사업에 대한 안내광고를 볼 수 있지만 주민설명회에 참석하면서 내가 대략적으로 이해한 사업의 요지는
이런 게 아닌가 싶다.
1) 서울간 복선전철화하면서 예상되는 교통량을 고려하여 연계 도로를 확장, 확충 하는 등의 정비사업을 한다.
2) 동시에 재정비 도로 근처 주택가에 주택재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3) 이러한 구상에 따라 대상지역을 9개지구로 나누어 사업을 벌인다.
그리고 이런 계획하에 우리 동네는 "약사재정비사업" 8지구 대상지역이 되었다.

그런데 내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정말 주민들에게 유익한 사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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