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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사람들과 나누고픈 한글 이야기 #2:한글과 한국어는 다르다.

우연한 기회에 어떤 회합에 참여했다가 자기의 경험·지식, 생활 TIP을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눌만한 게 없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문득 '한글'에 대해서라면 내가 몇 마디 이야기 하고픈 내용이 있음을 생각해 냈다. 평소 테레비나 인터넷에서 우리말과 우리글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한 마디 거들었으면 했던 생각들이 있다. (어쩌면 이 생각들이란 게 보통사람의 작고 얕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중언부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를 읽는 이들에게 먼저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짧고 조잡한 글솜씨로나마 두서없이 몇 차례 적어본다.

오래 전부터 매스미디어(mass media)에서 우리 말글 이야기를 다룰 때 한국어와 한글을 구별하지 못하고 뒤죽박죽 섞어 쓰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표적인 게 케케묵었건만 되풀이되는 '국한문(國漢文) 혼용'과 '순한글 전용' 논쟁이다. 본질은 우리말인 한국어에 있는데 논쟁은 이름처럼 '문자표기방식' 문제로 삐딱선을 타다보니 논쟁의 내용도 한국어와 한글의 개념이 혼재한 채 유익함이 없는 논박으로 그치기 쉽상이다. 또, 한글날이면 으레 신문기사, 칼럼과 TV방송 프로그램에서 하는 이야기, 외국인의 한국관광이나 다문화가정의 일상을 소개하는 유튜브에서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구경하다가 꺼내는 이야기가 한글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한국어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한국어와 한글은 다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어는 말이고 한글은 글자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한국어는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당연한 상식조차 혼동되는 세상이 된 거 같다. 그러다보니 일본식 한자말과 인터넷 줄임말, 외국말 남용 등이 난무하는 언어생활도 순한글로만 읽고 쓰면 저절로 우리말 사랑이 되는 줄 아는 게 아닌가 싶다.

제도권(행정, 법률, 언론, 교육, 도서·출판 등등)에서 자주 쓰는 말과 글에는 민초들이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일본식 한자말이 많다. 행정민원서식이나 법률조문이 아무리 순한글로 되어 있어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TV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말과 글은 '-은,-는,-이,-가' 같은 조사나 '-하다'정도의 말을 빼면 거의 한자말이나 영어 등을 이용한 명사형 단어들로 나열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주류사회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한국어가 그렇게 빈곤한 것일까?

내가 어렸을 때 한국어를 첨가어, 교착어 운운하며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라고 배웠다. 그러면서 한국어의 특징으로 꼽은 것이 동사·형용사 같은 용언과 의태어·의성어 같은 부사의 발달이었다. 이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증언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일례로 '맵다'라는 말을 영어에서 'hot'이나 'spicy' 정도로 표현할 때 우리는 '맵다, 매콤하다, 얼큰하다, 칼칼하다, 알싸하다, 얼얼하다, 아리다...' 등 여러가지 어감으로 표현하는 낱말이 많다. 의태어와 의성어를 보더라도 '화들짝, 폴짝, 성큼성큼, 알콩달콩, 쩝쩝, 짭짭, 살랑살랑, 맨들맨들, 도란도란, 왁자지껄...' 처럼 다양한 표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우리말 고유의 장점을 잘 살려쓸 수는 없을까?

90년대에 대전에서 엑스포(EXPO)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할 때에 '도우미'란 말이 처음 생겨났다.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엘리트들이 만들었을 것인데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같은 우리말을 생각하면 이는 어법에 맞지 않는 잘못된 말이다. 우리말 어법대로 한다면 '도우미'가 아니라 '돕는이/도울이' 정도가 되어야 옳다. 반면에 90년대에 유행하던 물건인 무선호출기를 부르는 이름인 '삐삐'가 있었다. 무선호출기의 호출음인 의성어 '삐삐'가 물건 이름이 된 것인데 어디서 만들고 시작한 이름인지 몰라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이름이었다. 아마도 우리말의 특성을 잘 살린 까닭에 민초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사용빈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나온 역사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언어생활이 영향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변하는 세태가 본래 가진 우리말 표현을 잠식하고 우리말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우리말 어법을 자꾸 망가뜨리고 있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까?


【출처】 Unsplash 의 Mathew Schwartz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사람들과 나누고픈 한글 이야기 #1:한글 글자수는 몇 개일까?

우연한 기회에 어떤 회합에 참여했다가 자기의 경험·지식, 생활 TIP을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눌만한 게 없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문득 '한글'에 대해서라면 내가 몇 마디 이야기 하고픈 내용이 있음을 생각해 냈다. 평소 테레비나 인터넷에서 우리말과 우리글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한 마디 거들었으면 했던 생각들이 있다. (어쩌면 이 생각들이란 게 보통사람의 작고 얕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중언부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를 읽는 이들에게 먼저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짧고 조잡한 글솜씨로나마 두서없이 몇 차례 적어본다.


한국사람들에게 한글의 글자수---알파벳(Alphabet) 또는 자음, 모음의 갯수---가 몇 개냐고 묻는다면 과연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을 할까? 만약에 나한테 이 질문을 던진다면 내 대답은.... '무한(無限)하다'가 되겠다.


무한(無限)이라...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자음 14개(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와 모음 10개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를 합해서 한글 글자수는 24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 때 사람의 입모양, 발음기관을 본따 아음(牙音: ㄱ), 설음(舌音: ㄴ), 순음(脣音: ㅁ), 치음(齒音: ㅅ), 후음(喉音: ㅇ) 과 하늘·땅·사람(天·地·人)을 본떠 ㆍ, ㅡ, ㅣ같은 글자를 만들었다. 여기에 가획(加劃)의 원리를 적용한 ㅋ, ㄷ, ㅌ, ㅂ, ㅍ, ㅿ, ㅈ... ㆁ,ㆆ과 음양(陰陽)의 원리를 적용한 ㅏ, ㅓ, ㅗ, ㅜ를 합해 기본글자 28개라 하였다. 기본(基本)글자 28개!!


세종대왕은 한글 글자수가 모두 28개라고 하지 않고 '기본(基本)'이라고 하였다. 즉, 다시말해 기본글자 28개를 가지고 얼마든지 새로운 글자를 추가해 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훈민정음으로 쓰인 옛날 문헌에서 지금은 쓰지 않는 ㆅ, ㅭ, ㅴ, ㅱ, ㅸ, ㆎ 등의 글자를 볼 수 있고 지금 쓰는 ㄲ, ㅆ 같은 쌍자음과 ㄼ, ㄶ 같은 겹받침에서도 훈민정음 28개 사용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새삼 세종대왕이 사람의 입모양과 발음을 본떠 글자를 만든 이유가 가늠이 되고 한글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지 않는가?


현대사회가 지구촌으로 글로벌(Global)화함에 따라 일상에서도 영어 등 다국적 언어 사용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어를 정확하게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도 필요해진다. 이때 현대 한글자모 24개에 갇혀 부정확한 외래어표기를 할 게 아니라 위대한 조상의 문자창제 정신을 이어받아 [p]와 [f]를 구별하고 [ɵ]와 [ð]를 구별하는 한글 글자를 만들어 봄이 어떠한가?


각자병서(各自竝書), 합용병서(合用竝書), 연서(連書) 등의 제자원리를 적용한 옛한글


2022년 9월 30일 금요일

[꼬시]가 아니라 [꼬치]라구요!

【출처】 PIXABAY

 

꽃이[꼬시] 피었다. / 솥을[소슬] 태웠다.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 입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틀린 발음이다. [꼬시]가 아닌 [꼬치], [소슬]이 아닌 [소틀]이라고 발음해야 옳다. 저들의 말대로 따른다면 한글도 '꽃 / 솥' 대신에 '꼿 / 솟'이라고 써야 할 판이다.

 

어쩌다 우리의 말글살이가  제대로 읽고 발음하는 일조차 이렇게 망가져 버린 지경에 이르렀나 싶다. 사실 우리 언어생활의 문제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행정과 법률에서 사용하는 딱딱하고 어려운 한자말,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남용, 젊은 세대가 은어처럼 쓰는 인터넷줄임말, 우리말 어법을 해치는 신조어 등등... 

 

우리가 잘못되고 오염된 말글살이를 무책임하게 하다보니 모국어로 한국말을 쓰고 자란 아이들이 우리말 문법과 규칙을 이해하는 일마저 어려워졌다. 가령, '솥+이'를 ' [소시] '라고 발음하며 자란 아이가 학교에 가서 배우는 ' [소치]'라는 구개음화 현상은 얼마나 낯설고 난해한 언어규칙일 텐가?

 

꽃이 [꼬시] [꼬치] 피었다. / 솥을 [소슬] [소틀] 태웠다.


윤석렬이냐, 윤석열이냐

【출처】 MBC 제20대 대통령 선거방송 (2022.03.10)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 · 석 · 렬(열)…

그런데 대통령 이름이 윤석렬일까, 윤석열일까?

뉴스매체를 보면 '윤석열'이라는 표기를 많이 쓴다. 그런데 앵커나 평론출연자들은 대통령 이름을 '윤석렬'로 발음한다.

글자의 표기와 말소리가 일치하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만약 '윤석열'이라는 표기가 맞다면 우리는 이를 [윤서결]로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번째 글자 '열'에서 음가가 없는 초성자음 'ㅇ' 대신에 앞 글자 '석'의 받침 'ㄱ'을 이어지는 음절의 첫소리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이를 연음법칙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이름을 '윤석열'이 아닌 '윤석렬'이라고 표기한다면 우리는 이를 [윤성녈]이라고 읽어야 한다.

발음을 따져보면 두번째 음절 ' [석] '의 끝소리 'ㄱ'과 세번째 음절 ' [렬] '의 첫소리 'ㄹ'음이 각각 무성음과 유성음으로 붙어서 소리가 난다. 우리는 이럴 때 동화라는 음운변화를 거쳐서 발음하게 된다. 즉, 'ㄱ'음과 'ㄹ'음을 유성음 'ㅇ'과 'ㄴ'으로 바꾸어 발음하기 때문이다. (이를 자음접변 또는 자음동화, 역행동화, 상호동화, 불완전동화라고 한다.)

 

'윤석열'은 ' [윤서결] '로 '윤석렬'은 ' [윤성녈] '로 발음하는 게 맞다.


2022년 9월 24일 토요일

2022-09-24|벤투로는 안 된다

어제 코스타리카와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이 있었다. 이강인 선수는 출전하지 못했고 결과는 겨우 2대2 무승부로 끝났다.

4년 내내 바뀌지 않는 선발명단과 포매이션을 보면서 나는 TV를 켜지 않았다. 후반이 한참 지나도록 이강인의 교체출전 소식은 없었고 나는 오히려 한국 대표팀이 더럽게 못하는 경기력으로 패배해서 이제라도 감독을 바꾸고 대표팀을 새롭게 재정비하는 효과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유튜브에서 축구 콘텐츠를 팔아먹는 유명 스포츠채널 운영자들의 탄식과 한숨도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똑같은 선수, 경기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용병술… 예견된 일이었고 그런 벤투에게 뭘 기대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2022년 3월 11일 금요일

이태원클라쓰를 본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이서:
❝ 그래도 지금만 한번 참고 넘어가면 다 해결될 수... ❞


박새로이:
❝ 지금 한버언!!
지금만 한번, 마지막으로 한번!
또, 또 한번!
하아... 순간엔 편하겠지...
근데, 말이야... 그 한번들로 사람은 변하는 거야! ❞


【출처】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명장면 클립 3회 (2020.02.07)


조이서:
❝ 나는... 사장님이 손해보는 거 싫다구요. ❞

박새로이:
❝ 건물에서 쫓겨나? 손해가 억이야?
장가(長家)는 적이야.
적이 나를 공격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언젠가 겪을 일, 대수롭지도 않아.
근데, 지금 내가 화가 나는 건 내 편이라고 생각한 너 때문이라구! ❞

조이서:
❝ 나는... 나는 다 사장님 위해서... 사장님 생각해서... ❞

박새로이:
❝ 왜~애... 날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내 사람들을 자르는 거냐고...? ❞

【출처】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명장면 클립 8회 (2020.02.22)


2022년 1월 8일 토요일

찍을 놈이 없다

 

20대 대통령선거 유력 예비후보들

찍을 놈이 없다.

이재명을 찍으려고 했지만 갈수록 그의 행보가 꼬여간다.

추미애를 중추역할로, 유능하고 개혁적인 인물들을 캠프 적재적소에 임명하길 바랐지만 그는 신속한 행정지원을 명분으로 재난기본소득 입장을 철회하고 조국문제를 사과했다. 불분명한 아들도박논란을 성급하게 인정해 버렸고 이낙연과 '원팀'을 부르짖는다.

여론에 떠밀려 한번 취소했던 페미니스트 유튜버 출연을 기어코 성사시켰다.

그에게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 


청년배당이란 보편복지를 시행하고 정치공작을 일삼는 조선일보를 폐간하겠노라 말하며 세월호참사 추모뱃지를 떼라는 여성한테 '어머님 자식이 죽어도 그런 말 하겠냐' 일갈하던 이재명을 미래의 대통령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손바닥 뒤집듯 언제든 기본소득제도를 유보하고 주류기득권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정치개혁의 의지를 굽히고 페미니즘에 휘둘려 새로운 지옥을 보태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를 찍을 필요가 없다. 


에효… 

차려진 밥상에 빈그릇만 나뒹군다… 


2020년 4월 17일 금요일

3.2%의 목소리

【출처】 PIXABAY

우리
동네
3.2%...
내가 꾸는 꿈이 지금 세상에서 내는 목소리... 3.2%...

2020년 3월 6일 금요일

열려라 희망! 열려라 행복!

【출처】 PIXABAY

쥐뿔도 없는 가난한 나도 마음속으로 손뼉을 친다. 응원을 보낸다. 꼭 승리하길!! 기쁨의 함성을 맘껏 부르짖기를!!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전진하는 큰 한걸음이 되길!!

2020년 2월 26일 수요일

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

【출처】 PIXABAY

사내는 아침부터 노인네가 내어놓은 이불 빨래를 세탁기에 돌린다. 사내는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비가 내린 뒤라 큰 빨래를 해야 하는 일이 영 탐탁치 않다.

한참이 지나 빨래가 끝난 이불을 꺼내 건조대에 널고 보니 며칠 전 세탁기에 돌렸던 빨래들이 온데 간데 없다. 달랑 사내의 팬티 한 장 뿐이다. 노인네는 동생이 제 방으로 거둬갔다는데 의심스럽다. 사내의 수건과 양말을 찾아야 한다. 동생 방으로 가본다. 동생은 한창 자고 있다. 다시 거실로 나와 노인네에게 자세히 묻는다.

결국 노인네가 제 가방에서 사내의 연두색 수건을 꺼낸다. 얼마전 노인네가 사내의 수건을 엉뚱한 곳(?)에 쓰는 바람에 새로 산 수건이다. 사내의 양말도 같이 나온다. 사내는 표정이 굳어진다.

사내는 묵묵히 노인네 밥을 준비한다. 두부조림과 김치 약간을 얹은 두 숟갈의 밥에 참기름을 뿌린다. 곁에는 달걀 프라이 하나를 접시에 담는다. 마실 물을 데워주려고 노인네가 쓰는 물잔을 찾으니 소반에는 안 보인다. 노인네 물잔이 거실 방바닥 요강 옆에 나란히 서 있다. 사내는 더 심란해진다.

그래도 사내의 할일은 계속된다. 동네 마트에서 새로 사온 두부와 참치로 두부조림을 만들고 밥을 새로 안친다. 그런데 이번엔 더러운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치우지 않은 김칫국물과 먹다 흘린 반찬찌꺼기가 식탁에 그대로 말라붙어 있다. 동생 짓이다.

사내는 속으로 '하아…'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쉰다.

참다 못한 사내는 집을 나왔다. 천원짜리 달달한 쵸코바라도 하나 먹어야 화나고 답답한 속이 조금이라도 풀릴 거 같다.

밖은 비가 와서 하늘이 흐렸지만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걷힌 공기는 달고 상쾌하다.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적폐청산이 필요한 사회

【출처】 PIXABAY

사회에 더러운 똥이 차고 넘친다. 어마어마한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 법 위에 군림한 재벌, 정의는 쌈 싸먹고 재판을 거래한 사법부, 군사반란을 계획한 군대, 안하무인 깡패검찰, 권력에 아부한 기자와 언론, 탐욕으로 부정부패한 관료와 정치인, 양심을 팔아먹은 학계와 지식인… 이런 것들 치우라고 민중이 새로운 이들에게 권력을 주는 거 아닌가? 엎어지고 넘어지면 다시 씩씩하게 일어서서 싸워야 될 일 아닌가?

새로이 권력을 쥔 자들에게 이런 일은 그렇게 절실한 문제가 아닌가 보다. 당장 불에 태우고 땅에 묻어 버려야 할 쓰레기들과 여전히 타협의 여지가 남았나 보다.

답답하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세상의 힘을 가진 저들의 정의는 아직도 한참 다른가 보다.

불편한 마음

【출처】 PIXABAY

사내는 마음이 안 좋다. 어제 그의 누나가 사내 집에 왔다. 늘 가난과 불안 속에 시달리는 사내한테는 혈육의 방문조차 부담스런 일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없던 계획이 생겨서 익숙한 일상이 깨진다는 건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그가 책임지고 떠안아야 될 일이 새롭게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사내는 오늘도 누나가 다녀간 일을 곱씹는다. 감당치도 못할 말을 너무 쉽게 내뱉은 건 아닌지... 같잖게 씩씩한 척을 한 건 아닌지... 차라리 더 솔직하게 뻔뻔해질 것을... 결국 서로 답답하고 괴로운 처지만 확인했던 거 같다. 사내는 후회도 되고 자책도 된다.

사내는 불편한 마음을 자꾸만 괴롭히다가 새로 산 구만 원짜리 운동화에 아까운 흠집을 내고 말았다. '젠장, 되는 일이 없구만!' 사내는 또 마음을 괴롭힌다.

2020년 2월 6일 목요일

밤의 의미

출처:PIXABAY

몸도 튼튼하지 못하고 손에 쥔 것도 없고 마음에 남은 용기와 배짱도 없는 사내는 밤이 아늑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낡고 병든 주변도 잠이 드는 시간. 변변한 수리 한번 못해서 오래된 집 지축을 흔들던 포크레인도 멈추는 시간. 가압류 결정통지문 같은 법원 등기우편이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시청 행정우편 따위도 날아오지 않는 시간. 하루 종일 부대끼고 시달린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는 시간.

사내는 잠을 자는 밤이 아깝다. 이 평화와 안락을 잠 자는 일로 순식간에 뺏기고 싶지 않다. 잠을 쫓는다. 오감을 깨우고 쌓였던 감정을 풀어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빠져든다. 잠을 쫓는 시간이 길어진다. 모자란 잠을 날이 훤히 밝은 시간까지 거칠게 채운다.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불안심리를 떨치려는 병리현상일지도 모르고, 잠이 보약이라는데 몸을 해치는 나쁜 버릇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사내한테는... 줄일 수는 있어도 쉽게 버릴 수 없는... 달콤한 중독이다.

2020년 2월 4일 화요일

운동화... 살까, 말까?

출처:ADIDAS 온라인 스토어

누나와 여동생이 생일 선물 대신 쥐어준 돈 10만 원이 생겼다. 운동화 한 켤레를 사야겠단 생각을 했다. 큰 맘 먹고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를 골라 본다. 가격이 8~9만 원 정도 하는 모델 중에 맘에 드는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시내에 나갈 때 타는 버스비 몇 천 원도 궁한 사내에게 십만 원은 아주 큰 돈이다. 이게 최선의 소비일까...? 돈을 준 누나와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소비를 하고 싶다. 지지하게 돈을 쓰고 싶진 않지만 과분한 사치는 아닐까? 운동화가 좀 낡긴 해도 당장 신을 신발이 없는 것도 아닌데.... 더 유용하게 써야 할 데를 생각 못하고 분수에 안 맞게  너무 비싼 운동화를 사려는 건 아닐까? 주민센터나 치매안심센터 같은 곳에 가서 아쉬운 소리라도 하게 되면 번지르르한 신발 때문에 그 곳 공무원들에게 괜한 불신의 눈초리만 받게 되진 않을는지...?

운동화... 살까, 말까?

2020년 2월 1일 토요일

Let it be...


출처:PIXABAY

요강을 대충 닦아 치우고 더러워진 욕실 세면대를 청소한다. 또 답답하고 불안해진다. 무기력하고 겁도 많은 사내는 지금 소소한 일상의 안락조차 새로운 문제 앞에 끝장날까봐 두려워진다... 칫솔질을 해야 하는데 요강이 뱉어낸 욕실의 악취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밖으로 나와 집앞 편의점에서 콜라 한 병을 사서 마신다. 기대와 달리 콜라는 차가운 겨울 밤공기 만큼도 심란한 속을 달래주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와 욕실에서 이를 닦는다. 긴장된 정적이 싫어 켜 놓은 유튜브에서 《다스뵈이다》를 본다... 한국사회와 정치를 질타하는 김어준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무거워진 머릿속을 비우며 콜라의 탄산보다 훨씬 위로가 된다.

2019년 12월 28일 토요일

소양정(昭陽亭)

소양정에 올라 바라본 소양강변 풍경

집 가까운 곳에 소양정(昭陽亭)이 있다. 산책이나 운동삼아 걷기엔 안성맞춤인데 오랜만에 이 곳을 찾는다. (이렇게 좋은 풍광을 가까이 두고도  자주 못 찾는 건 평소 불안과 무기력에 짓눌려 사는 내 가난한 마음 탓이리라.)

집에서 10~20분 걸어가면 소양정을 오르는 돌계단 입구에 이른다. 입구 옆에는 친일파 이범익 단죄문을 비롯한 비석군(碑石群)이 있다.

오늘(26일)은 비석군 주위를 새롭게 가꾸는 모양이다. 사내 서넛이 있는데 한 쪽에선 팔을 걷어 붙여 삽질을 하고 다른 쪽은 측량기를 옆에 놓고 무언가를 의논중이다.

돌계단을 몇 차례 밟고 소양정을 오른다. 제 몸을 방 안에만 가두고 사는 늙고 약해빠진 샌님은 고작 계단 오르는 일에도 숨이 거칠어졌다.

계단 맨 꼭대기 마지막 단을 밟고 올라서자 탁트인 소양강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나무들 너머로 소양강 강줄기,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칠해진 소양2교, 흰색의 강변 아파트가 모두 보인다.

가빴던 숨이 고르게 잦아들자 소양정 사방을 천천히 둘러 본다. 익히 몇 번 왔던 곳이지만 되새김질 하듯 새삼 주변을 구경한다.

소양정 전경

소양정 바로 옆에 누각의 내력이 적힌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은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이요루(二樂樓)라고도 불리는 소양정은 이미 고려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누각으로 조선 인조 때 춘천부사 엄황이 정자를 수리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때 홍수로 잃은 것을 한번, 한국전쟁 때 불에 타서 없어진 것을 다시 원래 있던 데서 옮겨 1966년에 지금 여기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 춘천을 두 번이나 다녀간 다산 정약용의 흔적도 남아 있다. 다산의 춘천여정을 추억하는 다산길과 그의 소회를 적은 시문 가운데 한 편을 소개한 안내문이 그것이다.

소와 말은 나룻가에 서 있고
모래톱 물 다시 잔잔해지는데
풍경은 도읍에 가까워지자
넓게 트이어 험난한 곳 없고
강이 둘러싼 정자 성대하며
산은 멀고 평평한 들 넓구나...

다산길 안내문 (소양정 앞)

소양정이란 정자 하나를 둘러싼 풍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45년과 1950년의 역사 한 순간도 기록하고 있다.

1945년의 일은 '윤공용성영세불망비'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의 뜻은 '윤용성 공(公)의 영세를 바라고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세운 비석' 정도 되겠다. 1971년에 쓴 안내문에는 중앙초등학교 전신인 '춘주학교'라는 사학을 세운 윤용성이라는 사람을 기념해 1945년 학교 학부형들이 봉의산록에 세운 것을 이 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1950년 6·25전쟁 중 소양교를 넘어오는 북한군과 교전했던 '공병중대전적지'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6사단 7연대에 소속된 공병1중대는 보병 지원을 위해 대부분 출동하였고 남은 1개 소대병력이 지금 위치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 맞서 소총과 기관총으로 격렬하게 싸웠다고 한다.

윤공용성영세불망비 /  공병중대 전적지 (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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