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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0일 목요일

너희가 김수영을 아느냐?

내가 '김수영'이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게 고등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 수 영 시인
[ 출처: wikia ]

국어 교재 속 시(詩) 단원 말미에  김수영이란 시인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함께 그의 시 '풀'이 실려 있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김수영, '풀' 중에서


그런데 난 이 '풀'이란 시의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윤동주의 '서시'나 '별 헤는 밤'에서 느끼는 감흥이 이 '풀'이란 시에는 없었다.

오히려 이 관념덩어리의 시를 교재에 왜 실어놨는지, 또 이 시를 쓴 시인이 우리 문학계 대표적 참여시인이라는데 뭐가 그리 대단한 시인이라는 건지 수긍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우연히 시 한 편을 접하게 됐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째 네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 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켜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시인의 시였다.

그제서야 학창시절 품었던 오래된 의문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김수영이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이구나!'

김수영과 그의 시 '풀'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산문 한 편을 더 읽어본다.

형, 나는 형이 지금 얼만큼 변했는지 모르지만 역시 나의 머릿속에 있는 형은 누구보다도 시를 잘 알고 있는 형이오. 나는 아직까지도 <시를 안다는 것>보다도 더 큰 재산을 모르오. 시를 안다는 것은 전부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렇지 않소? 그러니까 우리들끼리라면 <통일> 같은 것도 아무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오. 사실 4·19 때에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소. 이 <느꼈다>는 것은 정말 느껴본 일이 없는 사람이면 그 위대성을 모를 것이오. 그때는 정말 <남>도 <북>도 없고 <미국>도 <소련>도 아무 두려울 것이 없습디다. 하늘과 땅 사이가 온통 <자유독립> 그것뿐입디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디까! 나의 온몸에는 티끌만한 허위도 없습디다. 그러니까 나의 몸은 전부가 바로 <주장>입디다. <자유>입디다……. (중략)
그러나 형, 내가 형에게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자체부터가 벌써 어쩌면 현실에 뒤떨어진 증거인지도 모르겠소. 지금 이쪽의 젊은 학생들은 바로 시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들이 실천하는 시가 우리가 논의하는 시보다도 암만해도 먼저 앞서갈 것 같소. 그렇지만 나는 요즈음처럼 뒤따라가는 영광을 느껴본 일도 또 없을 것이오. 나는 쿠바를 부러워하지 않소. 비록 4월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나는 아직도 쿠바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소. 왜냐하면 쿠바에는 <카스트로>가 한 사람 있지만 이남에는 2,000명에 가까운 더 젊은 강력한 <카스트로>가 있기 때문이오. 

- 저 하늘 열릴 때 ―김병욱(金秉旭) 형에게 _김수영 (1960) 중에서 [출처: kimsoo0.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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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시의 진가를 발견하는데 그의 시를 처음 접한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무지와 게으름의 탓이 크겠지만 그때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쳐 주는 대로 밑줄 치고 받아쓰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수업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더라면 나는 좀 더 일찍 김수영의 시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 같은 부류의 다른 학생들도...

2012년 4월 30일 월요일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사람
아무 것도 없다.
내 하늘과 내 땅과
내 꽃도
내 나무도 없다.
기대어 쉴 나무 그늘엔
비바람에 지쳐 낡은 담벼락뿐.
그리고 남은 것은
달랑 부끄러움과 늙은 빈주먹 하나.
아, 그렇구나!
나는 가난한 사람.
                                     (2011. 7. 2)


2011년 10월 10일 월요일

예쁜 꽃들은 죽겠지

예쁜 꽃들은 죽겠지
 

예쁜 꽃들은 죽겠지.
장미꽃만 남은 쓰레기 같은 세상.
꽃들에게 지들 향기를 버리고 장미를 닮으라 한다.
장미처럼 검붉지 않고
장미처럼 가시가 없는 꽃은 죽으라 한다.
허나 지 예쁜 꽃잎을 떨구고
지 고운 줄기에 가시를 달아도
너는 장미가 아니라 내쫓아버린다.
그냥 그대로 죽으라 한다.
그러니 이제 예쁜 꽃들은 죽겠지.
그 어여쁜 꽃잎과 그 고운 향기는 사라져
그 눈부신 자태들은 하나둘
먼지처럼 스러져 갈테지.
하여 머잖아 예쁜꽃들은 하나도 못보게 다 죽겠지.
세상이 온통 가시 돋힌 장미로 가득하여
냄새나고 역겹게 시들어 가겠지.
젠장할...
젠장할...
바보같은 사람들...
병신같은 사람들...
                                         (2011. 10. 9. 저녁)

피해심리

피해심리
 

뒤란에서 커다란 크레인 하나를 발견하고 겁이 덜컥난다.
동네에서 얼쩡대는 새빨간 크레인 녀석.
이 가난한 동네에 뭐 주워먹을 게 있어서 이렇게 어슬렁 거리나?
또 허허로운 세상소식처럼 이 허름한 동네에도
개발의 바람이 부는건가?
덜그락 쿵쾅, 덜그락 쿵쾅.
이웃집 개축공사에도 요란한 진동과 소음으로 지치는
돈없고 힘없는 가난한 집인것을...
있는 놈들은 또 무슨 꼼수를 부려
없는 사람 등짝을 후려칠 흉계를 꾸미려는 걸까?
씁쓸하고 두려운 마음만
굶주린 뱃속을 쓰리게 한다.
                                                                      (2011. 10. 9. 밤)

2011년 6월 16일 목요일

처지

Mindeulle

처지

 

내가 이만큼 달라진 줄 알았다.

내가 저만큼 자란 줄로 알았다.

허나,

엎어져서 아픈 줄 아는 멍청이였으니

맞아서 서러운 줄 아는 바보였으니

귓전만 때리던 것들이

눈에만 보이던 것들이

머리에만 들어오던 것들이

이제야 조금씩 내 미련한 가슴에 와 꽂힌다.

                                                                          (2011. 6. 16)

 

 

※그림원본 출처: 한국토종야생산야초연구소 총본부 (http://jdm0777.com/a-yakchotxt/mindeulre.htm)

2011년 6월 5일 일요일

낡은 방

 

낡은 방

 

여든 아버지 힘겨운 숨소리

비틀리고 녹슨 대문 삐걱이는 소리

집 잃은 고양이 기웃대는 발자욱 소리

울 너머 지나는 이의 층층계 밟는 소리

추위도 못 막고 찬바람만 쌩쌩

더위도 못 막고 땀 젖은 방바닥

먼지 쌓인 창문에 뿌우연 풍경

비에 젖은 보꾹에 청테이프 한 장

 

열어 젖히기도 닫아 잠그기도

덜그럭대서 뻑뻑하고 쉽지 않다.

 

밀리고 쪼들린 내 지친 맘도 딱 이 낡은 방 한 칸.

바람 좀 쐬자!

                                                       (2011. 6. 5)

 

2011년 5월 29일 일요일

말장난

20110529_01

말장난

나는 가수다.
너도 가수다.
그는 가수가 아니다.
그래서 노래가 좋아진다.
나만 가수다.
우리만 가수다.
그래서 노래가 싫어진다.

나는 사람이다.
너도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이 좋아진다.
나만 사람이다.
우리만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이 싫어진다.
                                                             (2011. 5. 28)

2011년 5월 25일 수요일

바보가 바보에게



















바보가 바보에게

세상이 원래 그런 거야!’
속으로 피식 웃었다.

너도
엎어져보면 안다.
바닥에 고꾸라져 보기 좋게 뒹굴면 안다.
부끄럼 가릴 손바닥 남지 않고
욕심 채울 주먹  남지 않으면
그제야 알게 된다.
토할 그늘도
울고 불고 따질 하늘도
뭣도 없는 가난한 땅임을
새빨간 알몸뚱이가 되면
그제야 비로소 안다.

그러니!
슬픈 일이다.
                                                  (2011. 5. 25)

2011년 5월 24일 화요일

마음을 자르며

















[사진: PHOTO by하늘나라]

마음을 자르며


무서워서 오지 않았으면 하는 길이 있고
외로움 나누는  누군가  만나길,
어디서 돈벼락 맞았으면.

마음과 생각뿐으로
마디와 발바닥에 힘을 내어
눈물로, 땀으로 견디어
입술에  스밀
마음에 굵어지는 나무 그룬데
나는 아직도 이렇게 허튼 생각을 켠에 쌓는구나.

못났다, 정말

                                                    (2011. 5. 24)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병(病)



















[사진: Health Korea(http://dosawoo.egloos.com/10701420)]


()

그래도 꼬라지에 지키고픈 모양과 생각과 욕심이 있어
일그러지고 뒤틀리고
뻣뻣해지다 꺾이고
눈을 하얗게 치켜뜨며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러다 보면
두통과
토할 듯한 울렁거림에
동안 시달린다.
                         (2011. 5. 20)

2011년 5월 18일 수요일

상처





[사진: 제로쿨(neotopaz)]


상처

그 이를 사랑하였을까 헤아릴 만큼
나는 그 이를 아낄 줄도, 위할 줄도 몰랐다.
뜯어낸 사람도 그러하지만
뜯긴 이가 더 아플 테니
이제, 남은 것은 부끄러움만…
                              (2011. 5. 18)

2011년 5월 10일 화요일

아직도



아직도



들고 나는 바람결에도 흔들리나 .

자르고 베는   자루 없나 .

날마다 답답함과 막막함으로 가슴 앓았는데도

기댈 자리도 누울 자리도  그리고 바라볼 하늘도 없는 아는데도

 밑도 끝도 없는 허욕을 꿈꾸는가 .

말없이 자라는 나무처럼 든든한  마음 키울 모르나 ,

아직도 나는.

                                             (2011 5 10)

2011년 5월 2일 월요일

가난


가난


바람이 거세게 분다.
비가 거칠게 내린다.
그래서 어둠은 짙게 드리운다.
숨이 턱턱 막힐 때까지
아무 것도
아무 것도 남을 때까지.

사는 날이
괴로움과 힘겨움과 부끄러움뿐.
몸뚱어리는 거둬진 추운 허수아비마냥 점점 망가진다.
마음덩이도 버려진 투명한 빈병마냥 점점 삭는다.

하여 묻는다.
가난한 이에게 ()있다는
예수란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것이냐?
                                                                                           (2011.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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