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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3일 금요일

나는 일베 조각상 파손을 환영한다

일베 조각상을  파손했다는 대학생 이야기에 통쾌한 감정을 금할 길이 없다.
[사진=한겨레신문]

이유는 간단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오뎅탕' 운운하며 비인간적으로 희롱했던 몰상식한 '일베'였다. 그 '일베'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한 개인의 예술창작의 자유로 용인될 수 있을 만큼 우리사회가 정의롭거나 민주적인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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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제주강정 해군기지,
쌍용차 해고 노동자,
용산참사,
배우 장자연,
밀양 송전탑,
세월호 침몰,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등등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시민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 그리고 인권이 짓밟혀
생겨난 아픔과 상처가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부정하고 탐욕스런 수구세력과 재벌의 논리가 판을 치고 피해자들의 호소와 민주시민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가두는 비열한 언론권력이 우리사회에서 득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 환경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오뎅탕' 운운하며 비인간적으로 희롱했던 몰상식한 '일베'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한 미대생이  일베를 상징하는 조각상을 만들었다. 학교는 그 조각상을 사람들이 오가며 볼 수 있는 정문에 설치했다. 중국관광객들이 조각상의 손가락 모양을 흉내내며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논란이 되자 조각상의 작가인 미대생은 일베에 대한 옹호도 비판도 아닌 작품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나로서는 이해가 명확하게 안되는 모호한 설명이다.  '작품의 훼손행위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조각상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일베조각상이 파손됐고 한 유명 논객이 이 문제를 거론했다. 언론권력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정치권력의 부패와 재벌의 불법·비리를 제대로 처벌하는 정의로운 사회라면
우리 사회가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장하는 자유로운 사회라면
난 이 일베조각상 문제를 한 미대생의 예술 표현의 권리로 인정해 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남의 눈치 안보고 내 정치적 입장을 당당하게 밝히기 어려운 사회, 정치이슈를 풍자·희화화 하는 코미디언조차 고소·고발로 재갈을 물리는 사회에서 일베조각상 문제는 단순히 예술·표현의 권리로 보호받을 순 없다고 본다.

생각해 보라.

만약 어느 예술가가 박정희의 친일반민족 행위와 독재 반민주 역사를 풍자하거나 이명박의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 문제를 희화화해서 비판하는 조형물을 설치한다면 과연 지금 우리 사회는 이것에 어떻게 반응할까?







2016년 5월 22일 일요일

「달고나」와 「뽑기」

TV를 보면 자꾸 '뽑기'를 '달고나'라고 부른다.
출연하는 연예인도 그렇고 화면에 붙이는 자막도 그렇다.

그러나 TV에서 말하는 '달고나'는 틀린 말이다.
그들이 '달고나'라고 말하는 것은 '뽑기'다.

나도 어릴적 설탕을 불에 달군 국자에 녹여 소다를 섞어 만든 것을 '뽑기'라고 불렀다.

우리 누나는 내가 먹어보지 못한 '달고나'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테레비가 나서서 '뽑기'를 '달고나'라고 잘못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 사회가 우리 말과 글을 엉망진창으로 함부로 쓰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이것을 가리키는 말을 저것이라 가르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디 테레비뿐이랴!

다행히 구글검색으로 '뽐뿌게시판'에서 이런 잘못을 바로 잡는 글을 찾았다. ☞









뽑기는 윗 사진처럼 설탕을 국자에 녹여 소다를 섞어서 만드는 황색의 과자구요...

달고나는 아랫 사진처럼 하얀색 각설탕 비스무리 한걸 국자에 녹여 먹던거 아니었나요?  돌사탕이라고 부르기도 했구요.

소다를 섞지도 않고, 부풀지도 않습니다.

70년대생 서울 토박이인데, 저희 시절에는 둘은 분명 확실히 구분되었고, 다르게 호칭되었습니다.

이게 어느 샌가 달고나=뽑기가 되어버린 듯 하군요..

사진 출처는 두산백과인데, 일단 두산백과에는 제가 기억하는 것처럼 정의되어 있네요.


【출처】 뽐뿌:자유게시판 - 뽑기와 달고나는 다른 거 아닌가요??? → 원문 바로가기

2016년 4월 8일 금요일

한국사회 투표권의 문제점

20대 국회의원 선거인 4·13총선이 앞으로 5일 남았다.
그런데 내 투표권(선거권)은 과연 민주주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사진=중앙선관위, 레이더P]


① 1/5짜리 투표권 (겨우 15.67%만 확실하다.)

비례대표 의원을 뽑는 정당투표는 투표율만큼 의회 의석수를 배분한다.
그런데 20대 국회의 비례대표 의석수는 19대에 비해 7석이 줄어들었다.
헌법재판소의 현행 선거구 위헌판결에 따라 여야가 선거구 획정을 논의했지만
밍기적거리며 지지부진하던 끝에 결국엔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것으로 결론 내버렸다.

거대 양당 정치구도가 낳은 비극이었다.
국회의원 정원 300명 중 47명의 비례대표는 1/5이 조금 넘는다.
민의를 고스란히 반영한 의원 선출이 겨우 15.67%에 불과한 것이다.

② 한 번의 1등이 다 가진다.

나머지 253명의 국회의원은 지역구 선거를 통해 뽑는다.
한 번의 선거에서 득표 수 1등을 차지하면 국회의원 당선자가 되는 방식이다.

만약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다면 내 표는 아무 가치도 없는, 이른바 '사표'가 된다.
이는 심각한 민의의 왜곡을 낳는다.

당장 19대 국회의원 선거만 보더라도 제1당인 새누리당이 득표율보다 거의 10%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민심이 투표로 보여준 정치권력 구도를 실제 정치권이 왜곡해 나눠갖고 있는 셈이다.

참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비례대표제포럼

③ 시민의 직접민주주의와 진보정당의 성장을 싫어한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 인간의 권리와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사회가 되려면 시민들의 활발한 정치참여가 필요하다.

사회의 공익을 위한 책임과 의무를 가진 공인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과 토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시위와 집회 등이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공인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를 명예훼손이나 불법낙선운동으로 제약한다.
다양한 시위와 집회가 공공질서를 해치는 과격 폭력 범죄로 처벌되거나 불법선거운동으로 낙인 찍힌다.

진보정당들이 넘어야 할 제도적 장벽도 크다.

선거에서 일정 지지율 이상을 받지 못하면 정당 등록을 취소하거나 그 당명을 다시 써서 재창당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정해 놓았다.

그나마 소수 진보정당들이 헌법소원 심판 등의 지난한 노력으로 위헌판결을 받아냈지만 여전히 이들에게 정당활동은 녹록치 않다. (참조: 한겨레신문, “정당 취소조항 위헌” 녹색당 등 당명 유지)

이들이 정치선거를 치르려면 적잖은 돈을 기탁금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내야한다. (공직선거법 56조, ex-국회의원 후보 1500만원, 대통령 후보 3억원)

득표 수가 많은 제1당과 2당이야 당선·낙선에 상관없이 기탁금을 돌려받지만, 지지율이 매우 낮은 소수 진보정당 후보들은 다음 선거에서 또 다시 목돈의 기탁금을 마련해야 한다.
선거를 치를수록 경제적 부담으로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결국엔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은 미우나 고우나 1번 아니면 2번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선거판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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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시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우리가 '헬조선(Hell Joseon)'이라 불리우는 사회에 사는 건 부패한 정권의 강대한 힘과 야당의 무능함만이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의 힘이 아직 약하다는 게 아닐까?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 정권이 이토록 국민을 개무시하고 야만적인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민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시민이 우스워 보이기 때문이다.

수십년의 독재와 파시즘 문화에 길들여져 약육강식의 제도와 체제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사회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에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요지부동과 부동층

[네이버 사전]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 총선을 앞두고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바꿔 쓰면 좋겠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반면에 요지부동(搖之不動)이란 말이 있다.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많이 들어 본 말이다.

이 때문에 부동층(浮動層)이란 말을 부동층(不動層)으로 오해하기 쉽다.

우리 사회 20~40%의 새누리당 절대지지층을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부르는데,
오히려 '새누리 부동층(不動層)'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의미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한자말을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부동층(浮動層)을 유동층, 무당파층 등으로 고쳐 쓰면 굳이 한자를 병용해 표기하지 않더라도 의미파악을 쉽게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치가 시민의 생활을 쉽고 편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듯이
우리의 말글살이 또한 시민의 언어생활을 쉽고 편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사진: 한겨레신문

2016년 3월 10일 목요일

너희가 김수영을 아느냐?

내가 '김수영'이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게 고등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 수 영 시인
[ 출처: wikia ]

국어 교재 속 시(詩) 단원 말미에  김수영이란 시인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함께 그의 시 '풀'이 실려 있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김수영, '풀' 중에서


그런데 난 이 '풀'이란 시의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윤동주의 '서시'나 '별 헤는 밤'에서 느끼는 감흥이 이 '풀'이란 시에는 없었다.

오히려 이 관념덩어리의 시를 교재에 왜 실어놨는지, 또 이 시를 쓴 시인이 우리 문학계 대표적 참여시인이라는데 뭐가 그리 대단한 시인이라는 건지 수긍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우연히 시 한 편을 접하게 됐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째 네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 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켜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시인의 시였다.

그제서야 학창시절 품었던 오래된 의문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김수영이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이구나!'

김수영과 그의 시 '풀'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산문 한 편을 더 읽어본다.

형, 나는 형이 지금 얼만큼 변했는지 모르지만 역시 나의 머릿속에 있는 형은 누구보다도 시를 잘 알고 있는 형이오. 나는 아직까지도 <시를 안다는 것>보다도 더 큰 재산을 모르오. 시를 안다는 것은 전부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렇지 않소? 그러니까 우리들끼리라면 <통일> 같은 것도 아무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오. 사실 4·19 때에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소. 이 <느꼈다>는 것은 정말 느껴본 일이 없는 사람이면 그 위대성을 모를 것이오. 그때는 정말 <남>도 <북>도 없고 <미국>도 <소련>도 아무 두려울 것이 없습디다. 하늘과 땅 사이가 온통 <자유독립> 그것뿐입디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디까! 나의 온몸에는 티끌만한 허위도 없습디다. 그러니까 나의 몸은 전부가 바로 <주장>입디다. <자유>입디다……. (중략)
그러나 형, 내가 형에게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자체부터가 벌써 어쩌면 현실에 뒤떨어진 증거인지도 모르겠소. 지금 이쪽의 젊은 학생들은 바로 시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들이 실천하는 시가 우리가 논의하는 시보다도 암만해도 먼저 앞서갈 것 같소. 그렇지만 나는 요즈음처럼 뒤따라가는 영광을 느껴본 일도 또 없을 것이오. 나는 쿠바를 부러워하지 않소. 비록 4월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나는 아직도 쿠바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소. 왜냐하면 쿠바에는 <카스트로>가 한 사람 있지만 이남에는 2,000명에 가까운 더 젊은 강력한 <카스트로>가 있기 때문이오. 

- 저 하늘 열릴 때 ―김병욱(金秉旭) 형에게 _김수영 (1960) 중에서 [출처: kimsoo0.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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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시의 진가를 발견하는데 그의 시를 처음 접한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무지와 게으름의 탓이 크겠지만 그때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쳐 주는 대로 밑줄 치고 받아쓰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수업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더라면 나는 좀 더 일찍 김수영의 시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 같은 부류의 다른 학생들도...

국민, 시민, 민중 그리고 인민

국민, 시민, 민중, 인민... 이 낱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본질적으로는 의미의 차이가 없다고 본다.

▶ 국민 = 시민, 민중, 인민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낱말들은 질곡(桎梏)의 우리 근·현대사처럼 여기저기 상처입고 고통받아 쓰임에 차이가 생기거나 경계와 금기의 주홍글씨가 새겨지기도 했다.

게다가 가장 안타까운 일은 이 중에서 언중들에게 제일 많이 사랑받아야 할 낱말이 제일 심한 천대를 받고 도리어 제일 쓰지 말아야 할 낱말이 우리 말과 글에 제일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사용해야 할까?

4차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여한 시민들 모습 (2016.02.27)
[출처: 트위터]



1. 국민 (國民)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     -네이버 사전

네 개의 낱말 중 우리 사회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말글 바로쓰기 교육을 하셨던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가 사용하는 이 '국민'을 일제잔재로 보았다.
(1996년 김영삼 정부가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고친 사실을 생각해 보라.)

일본 식민지 지배 시절에 사용했던 '황국신민(皇國臣民)'에서 비롯한 말이라는 것이다.

'황국신민(皇國臣民)'이란 왕이 다스리는 나라인 제국주의 일본에서 신하된 입장으로 천황을 섬기며 사는 백성이란 뜻이다.

현대사회에서 자기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시민과는 거리가 먼 피지배계층을 의미하는 셈이다.

다른 지적도 있다.

국가의 구성원을 의미하는 국민은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인간에 앞서 국가가 전제되고 우선시 되는 개념으로 일종의 국가주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가 우월의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   -유진오의 회고록 중에서
<출처: 장정일, ‘신민의 시대’를 기억하라, 시사인 제378호, 2014.12.16>


2. 시민(市民)

① 그 시(市)에 사는 사람.
② <역사> 서울 백각전(百各廛)의 상인들.
③ [같은 말] 공민(公民)(2. 지방 자치 단체의 주민 가운데 일정한 자격 요건을 구비하고 그 자치 단체의 공무(公務)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     -네이버 사전

시민(市民, citizen)은 우리 사회에서 서울시민, 강남구민, 경기도민 식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어느 행정구역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시민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가진 주체를 말한다. 즉, 사전에서 풀이한 공민(公民)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인을 잘 표현해 주는 말로, 그 사회가 국가라면 국민이 곧 시민이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이런 의미의 '시민'은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정치적 수식인 '민주시민'이란 말이 그렇고 어릴적 세계사 시간에 배운 '시민혁명'이란 말이 그렇다.(민주시민, 시민혁명이 행정구역에 따라 민주군민이나 도민혁명이 되진 않는다.)

또 미국사회에서 쓰는 '시민권'이란 용어도 그렇다. '영주권'과 구별하여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권한을 가리킨다. (우리 사회가 이를 가리켜 '국민권'이라 말하지 않는다.)


3. 민중(民衆)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이른다. [비슷한 말] 민서.   -네이버 사전


'인민대중'의 줄임말로 우리 사회의 수구세력 일부가 '민중(民衆)'이란 낱말에 대해 마치 어떤 부정적인 정치색을 띤 용어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 사전에 나온 것처럼 그냥 사회구성원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내가 알기론 우리 사회가 '인민'이란 낱말을 금기시하면서부터 그 말을 대신해 썼고 80,90년대에 들어서 문학계가 민중문학이란 개념을 사용한 것처럼 민중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가리키는 뜻으로 그 의미가 더 좁아진 진 것으로 안다.

4. 인민(人民)

①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대체로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를 이른다. [비슷한 말] 민인.
② <법률>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인.     -네이버 사전

'인민'은 'people'이란 뜻으로 존재 그 자체로서 자격이 되는 본연의 인간 다수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인민이다.)

우리사회가 '인민'이란 말을 '인민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인민은행' 같은 쓰임에서 보듯이 무슨 '빨갱이' 용어 쯤으로 치부하지만 이는 냉전적 사고방식을 가진 우리 사회 다수가 지닌 큰 착각에 불과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3년에 실시한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는 구절이 있듯이, 본디 ‘인민’이라는 용어는 민주주의의 주체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중략)...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에서 그리고 대한제국 시대에 인민이라는 용어를 백성이란 뜻으로 쓴 기록이 발견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에도 대한민국에서 인민이란 단어를 쓴 바가 있으나 정식 용어로 골라지지 않았다.     -위키백과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공표한 최초헌법 '대한민국임시헌장'에도 우리 사회구성원의 범주를 가리켜 분명하게 '인민'이라 칭하고 있다. (더불어 법령에는 당시 우리 민족의 이천만 동포를 '국민'으로, 정치적 권리를 가진 인민을 '공민'이란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길지 않아 법령 전문을 싣는다.

■대한민국임시헌장▒
[시행 1919.4.11.] [임시정부법령 제1호, 1919.4.11., 제정]

 제0조 신인일치로 중외협응하야 한성에 기의한지 삼십유일에 평화적 독립을 삼백여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다시 조직한 임시정부는 항구완전한 자주독립의 복리로 아자손려민에 세전키 위하여 임시의정원의 결의로 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
선 서 문
존경하고 경애하는 아이천만 동포 국민이여, 민국 원년 삼월일일 아 대한민족이 독립선언함으로부터 남과 여와 노와 소와 모든 계급과 모든 종파를 물론하고 일치코 단결하야 동양의 독일인 일본의 비인도적 폭행하에 극히 공명하게 극히 인욕하게 아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와 정의와 인도를 애호하는 국민성을 표현한지라 금에 세계의 동정이 흡연히 아 집중하였도다. 차시를 당하야 본정부일전국민의 위임을 수하야 조직되었나니 본정부일전국민으로 더불어 전심코 육력하야 임시헌법과 국제도덕의 명하는바를 준수하야 국토 광복과 방기확고의 대사명을 과하기를 자에 선언하노라. 국민 동포이여 분기할지어다. 우리의 유하는 일적의 혈이 자손만대의 자유와 복락의 가이요. 신의 국의 건설의 귀한 기초이니라. 우리의 인도일마침내 일본의 야만을 교화할지요. 우리의 정의일마침내 일본의 폭력을 승할지니 동포여 기하야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지어다.
정 강
1. 민족평등 국가평등 급 인류평등의 대의를 선전함.
2. 외국인의 생명재산을 보호함.
3. 일절 정치범인을 특사함.
4. 외국에 대한 권리의무는 민국정부와 체결하는 조약에 일의함.
5. 절대독립을 서도함.
6. 임시정부의 법령을 위월하는 자는 적으로 인함.
대한민국 원년 사월 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제2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야 차를 통치함.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급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절 평등임.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신서 주소 이전 신체 급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

 제5조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 자격이 유한 자는 선거권 급 피선거권이 유함.

 제6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교육 납세 급 병역의 의무가 유함.

 제7조 대한민국은 신의 의사에 의하여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며 진하야 인류의 문화 급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야 국제연맹에 가입함.

 제8조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

 제9조 생명형 신체형 급 공창제를 전폐함.

 제10조 임시정부는 국토회복후 만일개년내에 국회를 소집함.

2016년 3월 9일 수요일

'푸르다'와 '파랗다'

'푸르다'는 무슨 색을 가리키는 낱말일까?

우리는 하늘, 산, 바다의 빛깔을 모두 '푸르다'란 말을 써서 사용한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라고 말할 때 '푸르다'는 파란색을 뜻한다. ☞ 창공(蒼空), 창해(蒼海)

그런데 푸른 산이라고 말하면 '푸르다'는 녹색, 초록색을 의미한다. ☞ 청산(靑山)

엄연히 다른 두가지 색을 '푸르다'란 낱말의 의미로 모두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쓰임이 괜찮은 걸까?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색깔을 나타내는 다른 말을 보자.

'빨갛다'는 말의 뜻을 분홍색과 섞어 쓰지 않는다.

'노랗다', '파랗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 뜻을 각각 주황색이나 보라색과 섞어 쓰지 않는다.

유독 '푸르다'만 전혀 다른 색깔인 파란색과 초록색의 뜻을 섞어 쓰고 있다.

원래 '푸르다'는 초록색의 의미를 가진 말이었는데 일부 지식인들과 출판인쇄물에서 파란색의 의미로 잘못 쓰면서 이런 오용이 굳어졌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설득력있게 들린다.

말의 효용면에서도 이런 의미의 혼란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

파란색은 '파랗다'로, 초록색·녹색은 '푸르다'로 쓰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푸른 산. 푸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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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으로 시작하는 동요가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바닷물 빛깔이 이 동요에서처럼 초록빛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이 때에는 '푸른 바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푸르다'란 낱말의 의미로 '파랑'과 '초록'을 모두 쓰는 정당성의 근거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바닷물이 녹색으로 보이는 것은 빛의 산란에 의한 자연현상일뿐, 우리가 관념으로 인지하고 있는 일반적 의미의 바다는 '파란 바다'이지, '초록색'을 뜻하는 '푸른 바다'가 될 순 없다.

2016년 2월 29일 월요일

감색, 곤색 그리고 군청색

지난 토요일 관심 깊게 읽은 한겨레신문 기사가 있다.

☞ 기사보기 "한겨레신문"

이인수 총장의 수원대 사학비리에 관한 연재기사인데 기사내용이 우리 주류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다루는 좋은 기사여서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다.

그런데 기사본문 중에 단어 하나가 눈에 거슬린다.


"이인수(64) 총장은 감색 양복 차림으로 재판 예정 시간보다 10분 일찍 법원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총장이 입고 법원에 갔다는 양복의 색깔인 '감색'이란 어떤 색일까?
인터넷 구글Google을 통해 적당한 사진을 검색해 본다.

감색 양복

내 어릴적 어른들이 '곤색'이라고 부른 색깔이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왕자표 크레파스'를 쓰던 그때 아이들은 이 색깔을 '군청색'으로도 불렀다.) 

그럼 '곤색'이 어떻게 '감색'이 됐을까? 곤색의 '곤-'은 일본말 'こんいろ(紺色)'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의 한자인 '紺色'을 우리발음으로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 '감색'이다.

그러나 '곤색, 군청색'을 가리켜 '감색'이라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 '감'은 '감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나만 하더라도 '감색'이란 말을 평소에 잘 쓰지 않을뿐더러 과일 '감'의 주홍색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어른이 되어 '감색'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난 이 말이 어릴적부터 나한테 익숙했던 '곤색, 군청색'을 가리키는 낱말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의미의 혼동을 줄 수 있는 일본식 한자말 '감색'을 대신해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고운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쪽빛
※ 군청색? 아니면 '짙은·진한 쪽빛' 같은 말 어떨까?

2016년 2월 27일 토요일

꽃이 꼬시 아니다

TV를 보다보면 방송 출연자들의 잘못된 발음이 귀에 거슬릴 때가 종종 있다.
생각나는 몇 가지가 이런 경우다.


① "솥에 물이 없어." → [ 소세 ]

② "꽃이 많이 피었네." → [ 꼬시 ]

③ "여기 무릎에  앉아봐." → [ 무르베 ]


모두가 잘못된 발음이다.

'솥, 꽃, 무릎'은 원래 한글표기 대로 [ 솥 ], [ 꽃 ], [ 무릎 ]으로 발음해야 한다.
그런데 말의 쓰임에 따라 발음이 다음과 같이 변화한다.


①* 솥(鼎, caldron): 솥 [ 솓 ], 솥이 [ 소치 ], 솥에 [ 소테 ], 솥을 [ 소틀 ], 솥만 [ 손만 ]
②* 꽃(花, flower):  꽃 [ 꼳 ], 꽃이 [ 꼬치 ], 꽃에 [ 꼬체 ], 꽃을 [ 꼬츨 ], 꽃만 [ 꼰만 ]
③* 무릎(膝, knee): 무릎 [ 무릅 ], 무릎이 [ 무르피 ], 무릎에 [ 무르페 ], 무릎을 [ 무르플 ], 무릎만 [ 무름만 ]


이러한 변화는 발음을 쉽게 하려는 경향 등의 여러가지 원인으로 일어난다. (이것을 학교에서는 끝소리규칙, 구개음화, 유성음화 등 국어의 음운규칙으로 배운다.)

그러나 TV 속 방송 출연자들의 언어에는 '솥에', '꽃이', '무릎에'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말 발음의 오용 사례가 빈번하다. TV가 우리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심히 걱정할만한 수준이다.

(☞ 여기서 잠깐!!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인 한글은 말소리를 소리나는 대로 온전히 적을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음소문자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우리말을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은  한글맞춤법에 따라  '소리대로 적되 그 말의 본 모양을 밝혀' 적는 원칙을 적용한다.

한 예를 더 들어보자.

우리나라 유명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멤버인 '헨리'의 이름을 많은 이들이 [헨니]라고 부른다. 캐나다 화교인 그의 본명이 Henry Lau라고 하니 그를 Henry[ Henri ]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상할 게 없다.

슈퍼주니어 헨리 (Henry Lau)
그러나 TV에서 대부분의 동료 출연자들이 그를 [ Henri ]가 아닌  [ 헨니 ]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Henry가 아닌 우리 글자로 된 '헨리'는 [ 헨니 ]라고 발음하는 게 적절치 않다. [ 헬리 ]로 발음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문리(文理)'라는 말을 [ 문니 ]가 아닌 [ 물리 ]라고 발음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분리(分離)', '윤리(倫理)'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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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겨울, 누나의 부탁으로 고3 수험생이던 조카에게 국어 문법에 대한 특별과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있다.

국어 문법이란 평소 자신이 늘 사용하는 모국어인 한국어의 구조와 원리, 규칙들을 정리해 모아놓은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언어의 질서와 규칙을 이해하는 일이 왜 아이들에게 이렇게 까다롭고 복잡한 것을 배우는 공부가 되었을까?

입시 중심의 주입식 교육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문란하고 혼탁한 언어환경, 즉 일본식 한자말과 외국어의 남용, 인터넷 은어와 비속어의 범람, 잘못된 우리말 신조어의 출현 같은 문제들 역시 아이들로 하여금  우리말글을 공부하는데 큰 해를 끼쳤을지 모른다.

TV 출연자들이 잘못된 발음으로 이야길 하고 글을 읽는 현상도 여기에 맥이 닿아있다고 본다. 일상의 삶에서 사회의 문란한 언어환경에 계속 노출되고 있는데도 실제 언어생활과 언어규범의 간극을 메우는 그 어떤 공교육이나 사회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불러온 결과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지금의 아이들이 그것을 답습하고 있다.



2016년 2월 24일 수요일

'개새끼'는 강아지가 아니다

‘개새끼’란 욕에 나오는 개는()’가 아니다.

여기서 쓰는-’쓸모없는, 보잘 것 없는이란 뜻으로 문법적 명칭은 접사다. ‘개새끼’, ‘개소리’, ‘개쓰레기같은 단어에서 쓰는-’는 쓸모없다는 뜻이다. ‘개떡’, ‘개폼 잡다에서는 볼품 없거나 보잘 것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팟캐스트를 듣다보니 이를()’로 오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식견의 깊고 얕음을 떠나 매한가지다. 나라꼴이 엉망진창이다보니 그 사회의 언어교육조차 이 모양 이 꼴인가 보다.


제발 국어사전을 뒤져봐라. 인터넷에서도 자판 몇 번 두들기면 그 뜻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글쓴 날: 2015년 12월 20일

출처: medium. Dec 20, 2015

2015년 5월 21일 목요일

[김어준의 파파이스#50] 세월호 잠수사 이야기


김어준의 PAPAis 50회에 민간잠수사 한 분이 출연했다.
세월호 침몰사건 당시 수색·인양 작업에 참여했던 잠수사라고 한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인양 작업 중에 사망한 잠수사(故 이광옥)가 계신데,
검찰과 사법부가 그 분의 사망책임을
수색·인양작업을 함께 했던 최고참 동료 잠수사(공우영)에게 묻고  있단다.

국가적 참사가 일어났는데 이를 책임 지는 어떤 국가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량한 시민들을 불러다가 짓지도 않은 죄를 물으려 한다.
이런 현실을  개탄하며 잠수사는 참담한 심정을 토로한다.


김관홍: 저 애가 셋인데 이 나라에서 애 못 키울 것 같애요.
※김관홍 - 세월호 침몰사건 당시 수색·인양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
김어준: 그런 생각 이전에는 안해 보셨어요?
김관홍: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전 마냥 행복했어요. 마냥... 그냥...
            내가 재산이 있든 없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얘들  모습 보고 이쁘고...
            그... 자식 잃어버린 그분들의 아픔은...
            근데 그걸 매도하잖아요.
            4월달...
           참, 창피한 얘긴데...(세월호 침몰사건)1주년 다가오기 전에
           정부에서 어떤 위로의 말조차 없이 돈얘기부터 꺼냈어요.
           허...너무 창피했어요.
           이런 나라에서 애를 어떻게 키워요?


[김어준의 파파이스#50] 정청래, 잠수사, 백색닌자, 김감독





2015년 2월 2일 월요일

[해방 70돌 특집 다큐] 법비사: 고장 난 저울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민주주의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2013년 1월 5일 토요일

호두 롤빵과 핫도그 6개

휴... 힘들다.
어디서나 편하고 효율적으로 내 감정과 생각을 일기장에 쓸 수 없을까?
프로그램을 찾고 MS사의 'ONE note'를 알게되고 무료 설치방법을 찾고...
하지만 결과는 영문판프로그램에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그러다 다시 구글 블로그 서비스로 돌아오고, 이제 겨우
포스트 별 비공개 설정이 아니라 블로그 자체를 비공개 블로그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아직 어제 쓰고 싶던 일기 한 줄도 못썼는데 토요일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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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힘들다. 도망쳐버리고 싶다.
58호를 발행하고 이번 주부턴 시간과 일에 쫓기는 근무를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또다시 변변한 취재 한번 없이(제야의 타종행사, 민노총 시무식 쫓아간 게 다다.) 일주일을 보냈다.

게다가 선배기자와 불편한 대화...
편집기술, 기사작성에 대한 선배의 생각? 선배의 조언? 선배의 지적?

불편했다, 솔직히. 입으로는 "아니오, 아니오"와 "앞으로 더 열심히"를 얘기했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생각들이 상당부분 있었다.
그러나 난 너무도 쉽게 '네'를 말하고 너무도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선배와 대화가 끝나고 예전처럼 또 멍해졌다.
'뭘 해야하는 거지? 분명 시간은 부족하고 할 일은 태산같이 많은데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선배기자와 행정직인 신위원님이 같은 사무실 안에 있는 것도 신경쓰였다.
 그들이 뭐라는 것도 아닌데 난 불편하고 신경쓰였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를 그들이 아니오, 아니오, 이렇게, 이렇게 할까봐
두려웠다.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할 수 없었다.
난 겁쟁이(겁을 집어먹고 아무것도 도전 못하는 사람)...

겨우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인터뷰요청 메일 작성과 정보공개청구 사이트에 자료청구를 하고, 신위원님이 부탁한 우편물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우체국에 들르고 점심을 사먹고 은행에 들러 몇년을 사용안한 계좌들을 정리하러 나섰지만 시간이 모자라 은행 한군데를 들르지도 못하고 은행업무를 다 보지도 못했다.

돌이켜보면 대단한 것도 아닌 일을
겁에 질리고 주눅이 들고 남의 눈치를 보느라 계획대로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하루가 갔다.

오늘 하려고 했던 산업단지 인터뷰 계획도 제대로 구상과 준비도 못하고...

젠장...

두려운 마음과 씁쓸한 마음을 품은 채 멍하니 거리 위에 서있었다.
집에 가기엔 아직 기본퇴근시간인 6시가 안됐는데...
그냥 집에 가면 나중에 책 잡히지 않을까?

뭔가 나중에라도 질책이 들어오면 변명할만한 명분과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마음도 몸도 갈팡질팡하다가 5시 30분이 다 되어간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시간도 되고 이 정도 시간이면 귀가하더라도
선배기자나 회사 식구들에게 책 잡히지는 않겠다 싶었다.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본 핫도그와 호두 롤빵을 샀다.
월급을 탄 지 아직 겨우 닷새쯤 됐는데 벌써 40여만원을 썼다.
그런데 또 먹을 것을 산다면 누나가 뭐라 그럴까...?
하지만 고심끝에 사기로 했다.

치과 치료비, 오곡 빚, 운전면허 비용 등을 생각해 매월 40만원을  저금하고
식비, 교통비, 휴대폰 요금 등을 생각하면 허투루 쓸 돈이 별로 없는 셈인데...

그래도 빵을 사기로 했다.
이번이 주전부리를 사는 이번달 마지막 날이라고 한 게 엊그제였던 거 같은데
나는 또 빵을 사기로 한 것이다.

세끼 밥을 꼬박 챙겨 먹었는데 왜 나는 허(虛)해지는 것일까?
스트레스를 먹는 거로 풀고 있구나, 난.

씁쓸했다.
오늘 할 일을 또 내 일로 미룬다는 부담감으로 마음도 무거워졌다.


(2013. 1. 5. 토)

2012년 9월 9일 일요일

답답하고 한심하다

Mun Jae In Kim Du Gwan

Jeong Se Gyun Son Hak Gyu

며칠전 "나는 꼼수다"의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합동취조회'를 들었다.

민주통합당은 우리나라 야당 중 득표율 1위의, 명실상부  야권 제1 정당이다.

당연히 수구매국노세력의 대통령후보와 대결을 펼칠 야권통합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당이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 후보들의 식견을 듣고는 대단히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수구매국노세력에게 이번 대선이 절박함의 문제라면 이날 방송에 나온 경선후보들에게 대선이란

한낱 개인의 권력욕 정도인 것 같았다.

4대강 사업 댐(=보)을 폭파해야한단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흔쾌히 동의를 하는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신중한 입장에서 타당성 검증과 손익심사 후 실행하겠다는 게 중론이었다.

한미FTA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폐기를 단정하는 후보는 없었다.

외교상 사정과 국가이익을 절충하여 최선을 찾겠다는 게 대답이었다.

또 왜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과거 자기들이 자랑할만한 정치이력이나 관료경력을 내세워 '내 출마 당위성이야 국민들이 잘 알지 않겠냐'하는 식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문재인 정도가 자신의 출마 변을 좀 설득력있게 말했다고 할까? 그들 중 제일 구체성과 기승전결이 있는 출마 이유였다.)

그들의 식견은 전략상 자로 재고 가위로 잘라낸듯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뿐이었다.

 

답답했다.

지금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끔찍한 세상이다.

세계 자살율 1위의 나라.

가계부채 1,000조에 해고가 곧 살인이 되는 나라.

용역깡패와 경찰이 사람에게 맘대로 욕하고 때리는 나라.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용산철거, 쌍용자동차, 두물머리, 4대강사업, 한미FTA, 저축은행,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10·26부정선거(일명 'D-dos사건'), BBK, 청와대 불법민간사찰, 한일군사정보협정, 종편채널, 언론미디어 악법...

 

단죄하고 징치해서 바로 세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개판의 세상이다.

800만 비정규직을 정규직 전환하거나 7년간 초중고 무상급식이 가능한 돈을 퍼붓고도 끝나지 않은 4대강 사업.

4대강 댐(=보) 폭파는 당연해 보인다.

ISD, 래칫, 네거티브 방식 개방,  스냅백 등 한국의 독소조항들로 가득찬 한미FTA협약.

한미FTA폐기도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폭파'도 '폐기'도 단언하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것을 그들은 당연하게 말하지 않는다.

본심이 그 정도 수준 밖에 못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표를 달라고 하는가?

 

(2012년 9월 9일 씀)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김정미와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

얼마 전 새롭게 알게 된 여가수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김. 정. 미.  40여년쯤 전에 노래를 부르던 가수다.

[사진: http://blog.nave.com/samoaz]

 

그런데 이 가수의 노래가 요즘 노래보다 더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들린다.

사실 요즘 음악의 주류를 형성하는 아이돌 그룹의 수많은 노래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가끔은 영어가 뒤섞인 랩과 빠른 박자감의 노래가 시끄럽게만 들릴 때도 있다.

물론 힙합과 댄스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내 감성이 가진 세대차와 개인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김정미라는 이 70년대 가수는 내 굳어지고 미련해진 감성이 알아챈 매력보다 훨씬 더 엄청나게 대단한 가수였다.

 

내가 김정미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TV를 보다가였다.

가수들의 서바이벌프로그램을 보다가 그들이 부른 원곡을 듣고 싶어졌다.

인터넷을 뒤진다는 게 들국화, 시인과 촌장 그리고 김추자까지 찾아보게 되었고 그러다가 우연히 김정미라는 가수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김추자를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몸놀림을 하면서도 김추자와는 다른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 여가수가 궁금해졌다.

사실 김추자가 데뷔했을 때 내가 태어났으니 김추자의 인기와 파격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를 몇 편의 글과 노래, 영상으로 경험한 게 고작이다.

그래서 그렇게 오래 전에는 이미자, 남진, 나훈아 류의 트로트가 가요의 전부였으리라 상상하던 내게

김추자 말고도 이렇게 매력적인 가수가 또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Kim Jeong Mi 02

[사진: '한국 사이키델릭 록, 보컬리스트의 전설 김정미' DAUM블로그 「안개동산」]

 

김정미는 정신여자고등학교 3학년인1) 1971년, 이른바 신중현 사단에 들어오면서부터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2)

사이키델릭록 보컬리스트라 불리는 그녀의 대표 음반이  '3집-바람(1973)'과 '4집-NOW (1973)'라는데, 내가 그녀의 매력을 느낀 노래가 바로 'NOW'에 실린 '봄'이다.

 

 

'사이키델릭 록'이 뭔지 몰라도 그냥 음악이 좋아서 듣고 있노라면 40여년전에 부른 그녀의 노래는 참신하고 매력적이다.

더구나 많은 젊은이들이 솔로가수 이선희의 노래로만 알고있을 '아름다운 강산'도

김정미의 노래로 들어보면 그 노래가 그냥 고음창법을 잘하는 가수가 부르는 국민가요 수준의 노래가 아니란 걸 금세 깨달을 것이다.

 

이런 감흥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이런 그녀의 매력을 인정하고 있다.

 

김정미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1970년대 초를 대표하는 '한국적 사이키델릭' 여성 보컬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1973년의 두 앨범 '바람'이나 NOW'는 '한국적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정수'를 보여준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1)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70년대 여가수 김정미의 LP(Long Play) 한 장, 촌스럽기 그지없는 앨범 재킷에 지직지직하는 LP 특유의 잡음까지 나는 음반 한장이 450만 원에 팔렸다면?

그나마 이것도 없어서 못 파는 형편이라면?

가요 LP 수집 붐이 일고 있다.

- 동아일보 2002-06-291)


신중현 스스로 자신의 음악에 가장 부합하는 보컬리스트로 첫 손을 꼽았던 김정미는 몽환적 관능으로 무장한 한국 사이키델릭 록 음악의 새로운 역사를 열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김정미 특유의 부유하는 듯한 목소리는 신들린 신중현의 기타 연주와 더불어 초월의 합일을 단숨에 이루어낸다.

그리고 아름다운 강산, 이 고금의 걸작은 김정미의 버전에 이르러 그저 '건전가요'가 아니라 꿈꾸는 듯한 도취의 아름다운 여행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이 앨범은 한국의 대중음악이 무려 삼십여 년 전에 어떤 위대함을 성취했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시금석이다.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1)

70년대 당시 어떻게 이런 곡이 나올 수 있었는지 들을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명곡입니다.

- 허브뮤직  이승용1)

한국에 많은 음반들이 있지만 Now 음반은 단순 대중 가수의 음반을 떠나서 한때 세계를 풍미했던 히피 문화와 반전 문화에 그 뿌리를 둔 사이키델릭 음악이라는 점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서 사이키델릭 음반이 나온 점, 그리고 단순히 외국의 음악을 모방한 것이 아닌 한국적인 정서로 녹여 내서 재 탄생 시킨 한국 전통 민요 정서로 비벼 만든 한국의 락 명반이라는 점에서 Now 음반은 한국 대중 음악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사이키델릭 뮤직은 그녀에 의해 국내 처음으로 제대로 소개 되었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사이키델릭 뮤직이란 환각음악이 아니다.

히피사상의 궁극이 평화를 지향했듯 그녀의 음악 역시 마음의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

- 신중현 자서전 중에서......1)

 

이 뿐만이 아니다.

김정미 음반의 가치가 재발견되면서 복각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으며3), 김정미 팬들에 의해 '김정미 헌정공연'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4)

 

Kim Jeong Mi 03

[사진:  '한국 사이키델릭 록, 보컬리스트의 전설 김정미' DAUM블로그 「안개동산」]

 

그렇담 이렇게 매력적이고 노래 잘하는 가수인 김정미는 지금 뭘하고 있을까?

신중현이 배출한 또 다른 가수인 '펄시스터즈'나 '김추자'를 보면

가끔 TV에 나와 옛날 인기곡을 다시 부르기도 하고, 당대를 살던 사람들의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회자가 되던데...

 

Pearl Sisters      Kim Chu Ja

[왼쪽 사진(펄시스터즈): http://www.lastfm.jp/music/The+Pearl+Sisters]

[오른쪽 사진(김추자):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kpark2010&logNo=40106349682]

 

김정미는 1977년 음반 발표를 마지막으로 음악계를 떠났고, 이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그리고 기껏해야 몇년 전  그녀가 헌정공연에 대해 팬들에게 감사하며 사진 한 장을 보내준6) 게  최신 정보 정도가 된다.

 

Kim Jeong Mi 04

[사진: '기적을 가능케 하는 마법같은 공간 블로그' NAVER블로그 「최규성의 대중문화산책」]

 

여기서 질문 하나.

그렇다면 김정미는, '펄시스터즈'나 '김추자'와 달리 왜 이렇게 대중음악계에서 오랫 동안 잊혀진 가수가 된 걸까?

사실 그녀는 활동 당시에  '펄시스터즈'나 '김추자'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기 가수는 아니었다고 한다.3)

그러나 화려하게 꽃 피우지 못하고 접어야 했던 김정미의 짧은 가수 활동에는

인기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 대중음악사의 안타까운 상처와 비극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Sin Jung Hyeon 01

[사진: http://bbs.music.daum.net/gaia/do/musicbar/read?bbsId=M004&articleId=21785]

 

먼저 신중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ROCK의 대부'라 불리는 그가 김정미를 배출한 사람이다.

내가 좋아한다는 김정미의 '봄'도 그의 작사·작곡 작품이다.

그는 이정화, 펄시스터즈, 김추자, 장현, 박인수, 김정미 등의 가수들과 음악작업을 같이 하는 동시에

'애드포', '덩키스', '더멘', '신중현과 엽전들' 등의 밴드음악 활동을 꾸준히 하였고

'봄비', '찻잔', '님아',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미인', '아름다운 강산' 등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은 많은 노래들을 발표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포크음악의 대모'로 불리는 양희은과 서유석 등 통기타 가수들과도 음반 제작을 하였고

8,90년대 '한국의 마돈나'로 불리는 김완선에게 댄스곡('리듬 속의 그 춤을')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음악활동은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았다.

 

가수후배들(한영애, 강산에, 이은미, 윤도현밴드, 김광민, 김목경 등)로부터 헌정앨범(A Tribute To 신중현, 1997)을 받거나7)

세계 유명 기타브랜드 '펜더(Fender)로부터 세계 6번째(Jeff Beck, Eric Clapton, Eddie Van Halen, Yngwie Malmsteen, Stevie Ray Vaughan, 아시아 최초 신중현) 헌정기타(2009)를 받았다.9)

또 그의 음악(J’ Blues 72)이 헐리우드 영화(Your Sister’s Sister, 2011)에 삽입10)되기도 하고

미국 음반사(Light in The Attic)에서 월드앨범(아름다운 강산: 신중현의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 2011)이 출시10)됐으며

막장정권 MB정부마저 보관문화훈장(2011)을 줌으로써10) 그의 음악 인생을 인정하기도 했다.

 

SJH YHE

[사진: http://s1168.tistory.com/entry/%EC%96%91%ED%9D%AC%EC%9D%80%EC%95%94%EC%88%98%EC%88%A0-%EB%8C%80%ED%95%9C%EB%AF%BC%EA%B5%AD-%ED%8F%AC%ED%81%AC%EA%B3%84%EC%9D%98-%EB%8C%80%EB%AA%A8%E5%A4%A7%E6%AF%8D-%EC%96%91%ED%9D%AC%EC%9D%80]

 

 

 

[사진: http://blog.daum.net/jejuufo/15670000]

 

그러나 그에 대한 이러한 음악적 평가와 명예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1970년대 정치적 폭력 앞에 신음하며 고꾸라져야 했다.

그리고 신중현의 역경은 가수 김정미의 좌절을 동반하고 있었다.

 

신중현은 당시 정치권력으로부터 친일군사독재자 박정희의 '박정희 찬가'를 만들어 달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7)8)

당연히 음악인의 자존심으로서 그런 정치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신중현의 거절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미움을 사는 계기가 된다.

 

1972년 국회를 강제해산하고 계엄령 선포, 유신헌법을 만든 박정희 정권은

대중음악계에서도 70년대 초부터 검열을 강화하여 금지곡을 양산하고 있었고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된 1975년에는 문공부가 나서서 아예 모든 대중가요를 재심사하며 222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고 한다.11)

이런 폭력은 신중현사단과 통기타 가수 등 이른바 '청년문화'코드로 불리는 이들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

 

이장희의 '그건 너' - 가사가 퇴폐적이고 저속하다는 이유

한대수의 '물 좀 주소' - 물고문 연상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허무주의 조장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 저속한 가사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 - 군인들의 사기 저하

양희은의 '아침 이슬' - 가사 중 '태양'이라는 단어가 북한식 인사를 암시함

폴 앤드 메리의 '퍼프 더 매직 드레곤'(Puff the Magic Dragon)' - Puff라는 단어가 마약을 묘사했다는 이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 불신조장

이외에도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등은 유신정권 찬양을 위한 노래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음반자체가 퇴폐로 규정됨12)

 

김정미 역시 저속한 창법 등의 이유로 금지곡을 당하거나 음반이 소각처리되는2)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70년대 정치폭력이 당시 대중음악의 심장에 결정적 비수를 꽂은 사건이 1975년 12월 '대마초 사건'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가수 등의 연예인들이 사회에서 범죄시 하는 '마약'을 복용한 도덕적 타락으로 비판하기 쉽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런 범주의 사건이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 길바닥에 앉아서 피워도 단속 한 번 당한 적 없던 대마초가 하루아침에 범죄 도구가 되고,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물에 집어넣는 고문을 가하며 당대 대중음악 스타들을 범죄자로 옭아맸다,13) 박정희 정권이 끝날 때까지.

 

Dae Ma Cho

[사진: '대마초 파동 30년 청년문화 '해피스모크'에 데다'  한겨레]

 

여기서 다시 질문 하나 더.

박정희 정권은 왜 그렇게 그들에게 가혹했을까?

단순히 대중문화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독재자의 독선과 오만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는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100만표도 안되는 표차로 간신히 누르는 등 정치적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꼈고

거기에 미국의 패색이 짙어가는 베트남전(~1975)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닉슨정부 등으로

한미군사관계 약화에 대한 우려도 커졌을 것이다.

하여 박정희 정권은 국내외 정치환경이 이렇게 나빠지다보니

자신의 정권안정과 유지를 위해 좀 더 강력한 철권통치 방식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권의 불안감과 예민함에서 볼 때

인간의 자유의지를 음악적 감성으로 다양하게 막 꽃피우려는 대중음악계의 성장과 발전은

그들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싹으로 자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달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여기에 대마초가 그 뿌리를 뽑는 아주 그럴싸한 빌미가 돼 주었던 것이다.

 

결국, 박정희라고 하는 친일군사독재정권의 무자비한 정치폭력 아래에서

우리의 소중한 대중음악 시대는 그 싹을 건강하게 틔우지 못하고 비틀려진 채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한국 ROCK의 대부' 신중현과, 후대의 평가가 아닌  진정한 '사이키델릭 록 여제'가 됐을지도 모를 가수 '김정미'가 있다.

 

 

- 첨언:

요즘도 역사를 잘 모른 채 근거 없는 '박정희 향수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다.

또 박정희의 독재를 인정한다고 입으론 떠들면서도 근대화를 가져온 대통령 아니냐며 변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보라.

당대 이렇게 뛰어난 음악인들을 문화적으로 살인하면서 우리의 감성과 대중문화를 난도질한 그를

아직도 그리워하는 이 사회는 정상인가?

 

(2012. 8. 20.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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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1) '내가 사랑했던 비운의 가수 김정미, 간다고 하지마오' DAUM블로그 「부에노의 사는 이야기」

2) 위키백과 - 김정미(가수)

3) '제2의 김추자, 김정미를 아시는가' 한겨레21 (352호, 2001. 4. 5)

4) '한국 사이키델릭 록, 보컬리스트의 전설 김정미' DAUM블로그 「안개동산」

5) '한국 사이키델릭 록의 여제 김정미 (봄)' 블로그 「핸디맨의 음악살롱」

6) '기적을 가능케 하는 마법같은 공간 블로그' NAVER블로그 「최규성의 대중문화산책」

7) '♣한국 ROCK계의 대부~ 신중현&The Man/아름다운 강산' DAUM블로그 우리사는 얘기

    ※ 밴드 이름, 철자 잘못으로 보임: The Man → The Men

    ※ 블로그 내용이 맥락, 표현, 단어 사용 등에서 주 8) 글의 인용으로 보임.

8) '신중현 - 임진모가 만난 사람' OIMUSIC 2002년 8월호

9) '락의 대부 [신중현] 펜더기타 헌정받다!' DAUM 뮤직 게시판 (냠냠 님)

10) '신중현 사운드의 50여년 기록...난 행운아' 연합뉴스 (2011. 11. 10 송고)

11) '70년대 청년문화와 금지곡의 시대' NAVER 블로그 MEGA PANTERA

12) '1.70,80년대 금지곡' 블로그 歸去來辭-不惑이냐 王惑이냐-

13) 김소민 '대마초 파동 30년 청년문화 '해피스모크'에 데다'  한겨레 (2005. 11. 30 등록)

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정치중립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한국화학공학회라는 단체에서 한 말이다.

이 단체에서 이런 말을 꺼낸 사연이 있다.
지난 4월 이 한국화학공학회라는 곳에서 제주 서귀포 학술강연에 김광섭이라는 70대 재미공학박사를 초청하였다.
김박사는 강연을 위하여 천안함 침몰사건-흡착물과 1번 글씨에 근거한 어뢰설을 검증하기 위한 버블의 온도 계산이라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강연이 취소가 되었고 김박사는 한국화학공학회로부터 한국의 특수한 실정 때문에 강연을 취소한다는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화공학회가 김광섭 박사에게 보낸 메일에는 화공학회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김 박사의) 논문은 금년에 두 번 있는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취소 사유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참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연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자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 학자의 논문발표와 강연의 자유를 제한한다니…?
말이 안돼도 너무 말이 안된다.
물론 이 이야기의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정권의 외압 가능성도 농후하고 딴은 권력의 눈치를 보는 학회측의 곤란한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 나오는 정치적 중립이란 이데올로기에 대해선 몇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정치와 우리 삶에 대한 우리사회의 오래되고 잘못된 인식과 가치관이 투영되어있기 때문이다.

먼저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우리 보통사람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흔히 정치하면 TV와 방송에서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이 생각나고 그래서 그들에게 욕지거리는 할지언정 우리 삶과는 별개의 이야기로 넘겨버리기 쉽다.
그러나 정치란 우리네 삶에서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우리는 원유가 등락이 반영도 안되는 기름값에 누굴 위해 걷는 건지도 모르는 간접세를 합친 가격에 기름을 산다.
그리고 그 비싼 기름 넣은 자동차를 탄다.
우리는 지금 응당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의 무료 서비스를 이동통신사들의 독과점 권력 때문에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
우리는 누구나 의료보험카드가 있다.
그러나 암, 백혈병, 치매 등을 염려하여 우리는 TV 속 수많은 보험상품 중 하나를 또 산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 중 누군가를 의료사고로 잃으면 변변한 법적 보호 하나 없이 판사, 변호사 앞에서 의사의 과실을 증명하기 위해 의료전문인과 길고 외로운 싸움을 한다.
어느 날에는 십여 년이 넘도록 다닌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통지를 받고, 하여 노동위원회에 이의제기를 했는데도, 그리고 법정에서 승소했는데도 재벌의 엄청난 권력 앞에서 억울한 눈물을 지으며 쫓겨 난다.
그리고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땀 흘려 지은 농사를 국가공익이란 이름의 토건행정 때문에 하루아침에 흙더미에 파묻히는 걸 눈뜨고 지켜봐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돈이 없고 자기 집과 땅이 없다는 이유로 피땀으로 일군 삶의 경륜과 노력의 소산을 빼앗긴 채 살던 집과 일하던 가게에서 강제로 쫓겨난다.
그리고 우리 중 또 다른 사람들은 좀 더 평등한 삶과 의로운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다가 경찰과 검찰에게 얻어 맞거나 체포 당하고 징역을 살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한 개인의 나홀로 삶이 아니라 사회적 고리와 맞물린 삶이다.
우리 삶의 많은 것이 사회의 공론의 장으로 나와 논의되고 합의되어 개선해야 할 대상이다.
즉 우리 삶의 문제가 정치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 보통사람들의 시선은 어떠한가?
국회의원 금뱃지는 돈많고 힘 센 사람이 다는 것.
정치하는 놈들이 제일 잘하는 건 몸싸움과 당파싸움.
정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것.
고작 이 정도 수준 아닌가?

그러나 정치는 우리 삶을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돈많고 힘 센 사람이 아니라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 국회의원 금뱃지를 달아야 한다.
그러니 더 치열하고 가열차게 싸워서 사회의 최대유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정치를 위해서 우리 보통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과 비판과 참여의 시선으로 정치판을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화학공학회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건의 발단은 김광섭 박사의 논문 내용이었다.
수십 명의 젊은 군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천안함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정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어뢰격침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젊은 목숨들을 빼앗은 살인자가 북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의혹과 문제제기가 있었다.
정부는 대답을 회피했다.
만약 정부의 발표가 거짓말이라면 누군가 젊은 군인들의 목숨을 빼앗고도 그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린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여전히 권력을 쥔 채 또 다른 젊은 군인들의 목숨을 무책임하게 빼앗을지도 모른다.

김광섭 박사의 학술강연은 정치적으로 정의로운 것이었다.
아무리 나름의 속사정이 있을는지 모를 일이지만 화공학회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변명은 정치적으로 부끄러운 짓이었다.

정치적 중립이라고?

개소리하지 마라.’
부끄러운 줄 알아라.’
하고 수십 개의 언론사가 비판을 했어야 옳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슬프다.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내가 트위터를 하는 이유











내가 트위터를 언제 처음 시작했는지, 왜 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기억은 없다.
다만 이것 저것 지난 흔적을 뒤져보니 한 2년쯤 전에 처음 트위터에 가입을 했던 것 같다.
생활비로 꾸기 시작한 빚이 점점 늘어가고 어떻게 해볼 도리는 막막해서 답답하고 괴로웠던 심정을 아무에게나 쉽게 터놓기도 어려워 나 혼자란 외론 감정마저 느끼고 있던 때였다.
그 때 박중훈 등 연예인도 화제가 되면서 SNS라는 것이 붐처럼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인터넷만 있으면 사회소통망을 구성할 수 있다…?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한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사회소통 수단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작정 가입한 트위터 세상은 내게 너무 낯설기만 했다. 뭔가 함께 나눌 관심사나 대화거리가 내겐 전혀 없는 것 같고 팔로잉’ ‘리트윗’ ‘해시태그등의 생경한 용어들
나는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트위터를 잊고 살았다. 내 생활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나마 교회 가족들의 헌금 덕분에 몇 달을 버티며 구직활동을 했지만 직장은 얻지도 못하고 손에 쥔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빚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눈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죽고만 싶었다.
채무 독촉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두려움과 회한의 연속이었고 죽고만 싶었다.
진짜 죽을 생각도 했다.
그러나 죽지 못했다.
죽는 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죽어 떠나기엔 너무 아까운 세상이고 내 자살이 억울해졌다.
비록 입에 풀칠만하고서 목숨을 연명하더라도 살고 싶어졌다.
파산의 방도를 찾아 보았다.
쉽지 않았고 친구들의 돈을 또 한번 유용하는 나쁜 짓도 저질러야 했다.

파산신청서류를 법원에 접수하고도 채무 독촉전화는 멈추지 않았다.
갚을 수 없는 형편이고 그래서 파산신청을 했다는 사정 얘기도 소용없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채권사의 태도는 냉정하고 매서웠다.
잔인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언제까지 무조건 갚으라는 둥, 집을 방문하겠다는 둥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 봐왔던 사채업 폭력배들의 행패를 상상하게 했고 날마다 그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어떻게 견디나? 어찌해야할까?
날마다 하루의 대부분을 이 빚독촉에 대한 시름으로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한 인터넷 문서 하나가 있었다.
불법채권추심 대응 10대 수칙
채권추심에도 지켜야 할 법적 기준이 있고 불법추심행위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에 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문서였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채무독촉의 시름을 한결 더는 느낌이었다.

고마웠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런 법규를 만들어준 누군가가 고마웠다.
감당 못할 빚에 몰린 이후 나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속에 살았다.
가족을 비롯한 사회의 시선도 책임 못지는 채무자에게는 차갑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채무자를 보호하는 법규를 누군가 만들어줬다는 데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그런사람이 되자.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났다.
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배우 김여진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을 지지한다는 김여진의 1인시위에 대한 기사였다.
반값등록금 문제가 하도 핫이슈여서 나도 무심하게 몇 번 듣긴 했지만, 김여진의 기사는 좀 남다르게 다가왔다.
최고 TOP배우는 아니지만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여배우가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에 관심이 갔다.
그것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 표명을 꺼려하는 우리나라 연예계 분위기에서 이 정도의 배우가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다는 것이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여진의 트위터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김여진이 트위터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트위터에 가입했던 일이 생각났다.
트위터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로잉’ ‘리트윗’ ‘해시태그를 배우며 소위 트친들을 만들어갔다.
1년이나 걸린다는 파산면책 심사를 견디는 시간 동안 트위터는 그 시간을 견디는 유용한 수단이자 내가 사회를 알고 만나는, 중요한 소통의 매체였다.

김여진의 트윗을 읽고 한진중공업김진숙을 알게 되었다.
명동마리제주강정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부당하고 억울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너무도 절박하게 내몰린 죄없는 사람들의 치열한 싸움이 너무 많았다.
그들의 트윗에는 뜬구름 잡는 듯한 얘기는 전혀 없었고 모두가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나와 크게 다를 바 없는)의 정직한 고백들이었다.
찌라시가 범람하는 언론계의 기사들보다 트위터 한 줄을 읽는 것이 현실을 더 깊이있게 배우는 방법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내 삶의 주변은 여전히 가난하고 불안정했다.
춘천시가 야심차게 밀어 부치는 약사천개발사업의 바람이 우리집 주변에도 몰아 닥쳤다.
주민설명회안내문이 우편으로 날아오고 부동산중개업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몇차례 무산되었던 효일재개발사업도 다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긍정적 변화가 아니었다.
절대 장년층과 노년층이 많은데다 2,30년 이상씩 살아온 터줏대감들이 많이 사는 주택가가 우리 동네였다.
대부분의 민심이 주거보장을 하지 않는 이러한 막개발을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었다.
동네는 많이 뒤숭숭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또 채무독촉안내 우편물이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이렇게 심란하고 불편한 삶은 나를 더욱 트위터에 열중하게 만들었다.

트위터는 억울한 처사에 치열하게 맞서 싸우는 서민들의 고백들이 있었고 그 고백들은 각박한 현실에서 참담함과 무력감을 느끼는 내게 힘겨운 삶을 버티는 용기를 주고 있었다.
말랑말랑한 노래 한 곡을 듣거나 달콤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위안과 힘을 주고 있었다.

이제 파산면책 결정을 얻었다.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삶의 미래도 캄캄하지만 채무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그래서인가?
그만큼 마음이 간사해져서일까?
이제는 희망버스, 명동마리 소식에 열중하던 때만큼 많은 시간을 트위터에 할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어찌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고 생계를 꾸리며 내 가정을 만들지 모르겠다.
그래서 두려움과 절망감, 그리고 외로움에 빠져든다.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인터넷을 배회하지만 내가 꿈 꾸기엔 너무 높아보이는 그네들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금세 씁쓸해지거나 소외감을 느낀다.
그럴 때 나는 다시 트위터를 찾는다.
거기에 정직한 목소리들이 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목소리. 억울함에 분노하고 호소하는 목소리. 부정한 세상을 비꼬고 탄식하는 소리. 어렵지만 힘들지만 돕고 격려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엔 TV나 상업적 인터넷 정보들처럼 허황한 설교도 요란한 치장도 거짓된 도덕도 그리고 교묘한 상술도 없다.
듣다보면
그래. 그래. 맞아. 나도 그런 생각해. 나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어
하고 동감하고 열중하게 되는 이웃의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나에게 가르쳐준다.
이게 네가 사는 세상이야.’
네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구.’
그리고 내게 질문하다.
그래, 이런 세상에서 너는 어떻게 살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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