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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7일 수요일

무서운 시간


무서운 시간


누가 나를 부르는 것이냐?

지나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를.
한때 비에도 풀 죽는 나를.

나를 부르지 마라.

쨍쨍한 햇볕에 몸을 태워보고 싶다.
물 맑은 어디선가 발 동동 웃음도 짓고 싶다.

제발,
아무도 나를 부르지 마라.

커다란 나무처럼 의로운 삶이 아니거든
내 철없는 욕심에 함부로 욕하지도 마라.
                                                   (2011. 4. 27)

불혹(不惑)

[사진: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 성서교실 (http://rbc2000.pe.kr/notes/3477)]


불혹(不惑)

잠자리를 털고 일어선 몸이  어지럽다.
쓰러질까 겁이 .
그리고 문득 나이 마흔 둘을 생각한다.

어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제와 어제가 다르지 않고 오늘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게
그는   얘기 그대로 어떻게 지내냐는 인사를 다시 건넸다.
정리가 되지 않는 삶의 면면을 끌어안고 견디던 나는
녀석에게 버거운 말투로 중얼거리기도, 싱겁게 웃기도 했다.
녀석은 사는 얘기가 답답하고 안쓰러운지
회초리 맞아야겠다 내게 섞은 잔소리를 했다.
그런 녀석에게 한번 싱겁게 웃었다.
그리고 어제 종일토록 녀석의 얘기를 곱씹었다.
녀석의 말이 맞는가, 하고
내가 잘못하는가, 하고.

그런데
병들어 아픈 것은 몸만이 아닌가 보다.
스치고 오잖는 바람결에도 이리 여리고 투명하게 흔들리는 데는
나름의 고집으로 한바탕 싸워도 보잖고
나름의 배짱으로 한바탕 맞서도 보잖고
마흔 해의 더께로 쌓은 울림을 잃어버린 까닭이렷다.

                                                                                                                                          (2011. 04. 26)

싸움



싸움


싸움은 그런 아니다.
싸움은 그렇게 나고 멋진 아니다.
'투쟁'이라 이름하고 주먹 불끈, 마음을 다지고 생각을 추스려도
싸움은 언제나 괴롭고 힘든
싸움은 막막함으로 온다.
싸움은 절망감으로 온다.
싸움은 비참함으로 온다.

그리하여 싸움은 빚독촉장처럼 온다.
그리하여 싸움은 낡은 지붕 장마빗물 걱정처럼 온다.

마음을 졸이고 태우며
주먹을 움키고 머리를 감싸며
싸움이 끝나도록 견뎌 싸우는 것이다.

싸움은 나는 일이 아니다.
'산다' 하는 싸움은 그런 아니다
(2011. 04. 26)

2011년 4월 22일 금요일

보시오판(television) 사람들


보시오판(television) 사람들


어제 그만 화가 나버렸다.

난 어제도 가난한 하루를 견뎠다.
봄볕이 적어 헐벗은 우리집 뒤란 봄나무 짧은 한낮 한때
꽃잎 몇 개 희미한 향기 쫓아 극성스레 앵앵대는 벌들의 가난한 비행
재개발 입소문만 몇 년 째 뒤숭숭한 빈집 빈터 많은 낡고 불안한 동네
어느 한 곳 마음 둘 풍경 없이 갑갑하고 한심한 신세를 고민하여
생각을 접고 펼치고
마음을 자르고 추스르고
하루를 그렇게 견딘 내게
그들은 고작 어느 여배우의 연애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연애도 사람의 일이나,
사람은 빼두고 인정(人情)은 제쳐둔
그들의 그까짓 개인사(個人事) 수근거림을
왜 나처럼 가난한 사내에게 들려주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pen)은 칼보다 강하단 전설을 잃어버렸나보다.         
                                                                     (2011. 4. 22)

2011년 4월 17일 일요일

4월은 가난하다

이제 겨우 날이 풀리려나.
봄볕 같은 봄볕이 땅을 적심을 구경한다.

나무도 봄볕을 알고
고새 움츠렸던 꽃잎을 한껏 틔운다.

벌들도 나무들 사이로
한결 넉넉해진 꽃들을 찾아 다닌다.

그러나,
4월은 가난하다.
4월의 봄은 가난하다.

차갑고 추운 겨울이 지나서
따뜻한 봄을 고대했건만
4월의 봄은 가난하다.

사람만 힘들고 마른 것이 아니었다.
꽃들도 말라서 물기가 적고 생기가 없다.
생기가 없으니 당연히 꽃의 향기도 희미하고 약하다.

옛날 배고프면 진달래를 따먹었다던가?
어릴 적만 해도 아카시아꽃을 따먹던 기억이 있지만

이젠 그러한 여유가 나무들조차 없는가보다.

꽃을 찾는 벌들도 나무가 귀하고 꽃이 귀하다보니
앵앵거리며 모여드는 모습이 극성스럽기까지 하다.

사람의 가난함이 자연에게까지 밀려오는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2011

4월은 가난하다.

2011년 4월 15일 금요일

신라호텔 이야기에 기억나는 방송


오늘(14일)…
아니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이니 , 어제 가십(gossip)거리마냥 방송이 떠들던 신라호텔 이야기가 눈에 들어 온다.

한 여자 디자이너가 한복을 입고 호텔 식당에 들어갔는데, 한복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출입 거부 당해 소란스러웠던 이야기다.
이야기에 대해서야 재론의 여지도 없고 나또한 호텔의 태도에 비판의 목소리를 천번이고 만번이고 보태고 싶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이 호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억나는 방송이 있다.

지난 3일에 MBC-TV에서 방영한 시사매거진에서도 이 호텔이 어느 중소기업에게 보여준 마뜩잖은 태도에 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사실, 이 기사는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거래질서문제를 '동반성장', '이익공유제' 같은 우리 사회의 화두와 같이 다룬 내용이어서
신라호텔 관련 부분은 그 중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어제 한복사건이 다시 터지고 보니 이 프로그램의 기사가 생각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 모양인가?'

당장에 머릿 속에 드는 생각이 이것이다.

비단, '신라호텔'이라는 특정 기업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하고 억울한 처사와 행태가 왜 이렇게 세상에는 많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겪고 싶진 않지만 살다보면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부당함과 그 억울함에 대하여 작게는 사과나 배상이 또 크게는 징계나 처벌이 이뤄져서
그 억울함과 부당함으로 생긴 상처들이 봉합되고 치료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이 우리 사회는 아직 잘 보이지 않거나 너무 희미한 것 같아서 답답하고 씁쓸할 데가 많다.
어제 한복 사건의 반향이 컸던 여론에는 이런 내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MBC-TV 시사매거진 2580 / 2011. 4. 3. / '이렇게 당했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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