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보면 방송 출연자들의 잘못된 발음이 귀에 거슬릴 때가 종종 있다.
생각나는 몇 가지가 이런 경우다.
① "
솥에 물이 없어." → [ 소세 ]
② "
꽃이 많이 피었네." → [ 꼬시 ]
③ "여기
무릎에 앉아봐." → [ 무르베 ]
모두가 잘못된 발음이다.
'솥, 꽃, 무릎'은 원래 한글표기 대로 [ 솥 ], [ 꽃 ], [ 무릎 ]으로 발음해야 한다.
그런데 말의 쓰임에 따라 발음이 다음과 같이 변화한다.
①* 솥(鼎, caldron): 솥 [ 솓 ], 솥이 [ 소치 ], 솥에 [ 소테 ], 솥을 [ 소틀 ], 솥만 [ 손만 ]
②* 꽃(花, flower): 꽃 [ 꼳 ], 꽃이 [ 꼬치 ], 꽃에 [ 꼬체 ], 꽃을 [ 꼬츨 ], 꽃만 [ 꼰만 ]
③* 무릎(膝, knee): 무릎 [ 무릅 ], 무릎이 [ 무르피 ], 무릎에 [ 무르페 ], 무릎을 [ 무르플 ], 무릎만 [ 무름만 ]
이러한 변화는 발음을 쉽게 하려는 경향 등의 여러가지 원인으로 일어난다.
(이것을 학교에서는 끝소리규칙, 구개음화, 유성음화 등 국어의 음운규칙으로 배운다.)
그러나 TV 속 방송 출연자들의 언어에는 '솥에', '꽃이', '무릎에'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말 발음의 오용 사례가 빈번하다. TV가 우리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심히 걱정할만한 수준이다.
(☞ 여기서 잠깐!!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인 한글은 말소리를 소리나는 대로 온전히 적을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음소문자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우리말을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은 한글맞춤법에 따라 '소리대로 적되 그 말의 본 모양을 밝혀' 적는 원칙을 적용한다.)
한 예를 더 들어보자.
우리나라 유명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멤버인 '헨리'의 이름을 많은 이들이 [헨니]라고 부른다. 캐나다 화교인 그의 본명이 Henry Lau라고 하니 그를 Henry[ Henri ]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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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주니어 헨리 (Henry Lau) |
그러나 TV에서 대부분의 동료 출연자들이 그를 [ Henri ]가 아닌 [ 헨니 ]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Henry가 아닌 우리 글자로 된 '헨리'는 [ 헨니 ]라고 발음하는 게 적절치 않다. [ 헬리 ]로 발음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문리(文理)'라는 말을 [ 문니 ]가 아닌 [ 물리 ]라고 발음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분리(分離)', '윤리(倫理)'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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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겨울, 누나의 부탁으로 고3 수험생이던 조카에게 국어 문법에 대한 특별과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있다.
국어 문법이란 평소 자신이 늘 사용하는 모국어인 한국어의 구조와 원리, 규칙들을 정리해 모아놓은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언어의 질서와 규칙을 이해하는 일이 왜 아이들에게 이렇게 까다롭고 복잡한 것을 배우는 공부가 되었을까?
입시 중심의 주입식 교육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문란하고 혼탁한 언어환경, 즉 일본식 한자말과 외국어의 남용, 인터넷 은어와 비속어의 범람, 잘못된 우리말 신조어의 출현 같은 문제들 역시 아이들로 하여금 우리말글을 공부하는데 큰 해를 끼쳤을지 모른다.
TV 출연자들이 잘못된 발음으로 이야길 하고 글을 읽는 현상도 여기에 맥이 닿아있다고 본다. 일상의 삶에서 사회의 문란한 언어환경에 계속 노출되고 있는데도 실제 언어생활과 언어규범의 간극을 메우는 그 어떤 공교육이나 사회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불러온 결과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지금의 아이들이 그것을 답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