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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0일 목요일

'기레기' 말고 '똥기자' 어떨까요?

기자와 검사가 기소 사건을 두고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년 방영한 MBC 드라마 「검법남녀 시즌2」)

엄중한 시국이다.

민주개혁세력과 수구기득권세력의 일대격전이 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요한 사안들이 여전히 조국 장관 가족의 검찰수사와 언론보도에 묻혀버리고 있다.

한국사회의 정치가 이렇게 조국 이슈에 휘말리게 된 데는 검찰의 부당한 정치적 수사를 확대재생산하는 언론의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실,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정국에 맞서 개혁과 적폐청산의 기치를 전면에 내걸고 투쟁적으로 돌파하지 못함에 답답함을 느낀다.)

어제도 조국이슈 보도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문제제기와 검찰·KBS의 반박논쟁이 뜨거운 얘깃거리가 되었다.

이런 와중에 나는 한편으로 말과 글에 대한 안타까움과 갈증을 또 한번 느낀다.

만약에 우리 사회의 언어생활이 '삶에 밀착하여 민중에게 쉽고 익숙한 언어를 쓴다'는 철학을 관철하고 있었다면 조국 이슈를 보도하는 언론의 목소리는 기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금보다 훨씬 더 명료해질 수 밖에 없을 테고 우리 국민들이 이 사안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훨씬 더 수월했으리란 생각이다.

하지만 청산되지 않은 우리사회 질곡의 역사처럼 그 사회의 습성이 고스란히 투영된 우리의 말과 글 역시 비틀리고 병들어 있는 게 현실이다.

비단 제도권과 주류사회뿐만 아니라 민중이 일상에서 쓰는 삶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기레기'라는 단어 하나만 짚어보자.

언론의 공정·진실보도 책임을 저버린 채 권력에 아부하고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기자와 언론을 비꼬는 민중의 언어다.

처음엔 이 낱말의 뜻을 아는 사람들조차 적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치만 나는 여전히 이 단어를 쓰는 데 개운치 않은 찝찝함을 느낀다.

'기레기'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주의를위한변호사모임', '기획재정부', '문화체육부', '해양수산부' 같은 낱말을 '민노총', '민변', '기재부', '문체부', '해수부' 식으로 줄여쓰는 얼빠진 지식인 나부랭이의 버릇과 닮아 있다.

이런 줄임말 버릇은 우리말 어법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글자수를 줄이는 데 급급한 나머지 뜻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말어법에 맞게 고쳐쓴다면 '민노총', '민변', '기재부', '문체부', '해수부'가 아닌 '민주노조연맹', '민주변호사모임', '재정부', '문화부', '해양부' 정도의 줄임말로 뜻을 쉽게 구별하도록 쓰는 게 옳다.

'기레기'라는 줄임말 역시 '기자쓰레기'나 '쓰레기기자'로 뜻을 구별하기 쉽게 쓰는 게 바람직하다.

굳이 음절수를 줄여쓰고 싶다면 우리말 어법에 맞는 낱말을 새로 만들어 쓰면 된다.

가령 '기레기' 말고 '똥기자' 정도의 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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